아침저녁 운동이랍시고,
집 앞 논둑길을 걷는 나에게 바람은 말합니다.
<공연히 혼자 인생의 짐을 다지고 사는 것처럼 투덜거리지 말고 살라.>고 충고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또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어차피 모두 채울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일상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나의 일상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닥쳐 올 미래만 생각하면 두렵고 조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가을이라는 계절이 머무는,
들녘을 걷다 나도 모르게 외로움과 쓸쓸함에 빠져버립니다.
황금빛으로 벼가 익고 콩팥의 꼬투리가 불룩해지는 풍성함 뒤에,
시나브로 여름 장마에 쓰러져 검은 빛으로 누워있는 잔상을 보게 됩니다.
결실의 풍성함만 즐겨도 좋으련만,
이상하리만치 예전에는 그냥 넘기던 사소한 이야기들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혼자서는 가까운 아들집에도 오지 못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걷기에도 힘드시면서 막내딸에게 주기위해 고추를 말리시는 장모님,
가을날에 보게 되는 추수한 뒤 남은 빈 밭의 허전함처럼, 당신들의 그 사랑이 애잔하기만 합니다.
길가다 우연히 들린 소주방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맥주를 마셔봅니다.
7080 음악이 흘러나오는 홀 안에서 흥얼거리며 안주를 장만하는 여인네의 새하얀 옆모습에서,
문득 이미 지나간 추억이었음을 흠칫 깨닫게 합니다.
우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허전한 마음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대신 채우려 해보지만,
추억은 이렇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남긴 아픔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시간은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것 역시 채울 것이 있는 사람들이 늘어놓는 말에 불과합니다.
시원한 맥주 첫 잔이 주는 그 즐거움과 같이 내게 남겨진 그 누군가의 추억들을,
마음으로 품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요즘은 항상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살아갑니다.
제발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외면하지 말고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제발 <헛된 짓거리를 안 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어차피 써야 할 돈이면,
공연히 궁상떨지 말고 지출하고,
가야 할 자리면 망설이지 말고 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반드시 써야 할 곳은 늘어가고, 그 액수도 많아질수록 의도하지 않아도,
조금함에 자꾸 움츠려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울수록,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벌써 나의 인생도 계절로 말하면 가을쯤에 머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의 시간이 안타깝고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절감하고 삽니다.
꼭 새롭게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내 인생을 통해 내가 저질러놓은 일들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혹여 그동안의 잘못이나 후회는,
모두가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겪게 되는 일입니다.
공연히 다른 사람이나 세상 탓만 하면서 나의 모자람을 합리화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째든 이제는 내게 주어진 나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아직 영글지 않은 열매라면,
더욱 더 정성을 들여 하루빨리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모자라면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 해의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내게 주어진 인생을 포기하는 것일 것입니다.
평소에 항상 준비하고,
노력하고 살았으면 그럴 일도 없지만,
항상 닥쳐야 알게 되는 것 또한 인생사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내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동물처럼 내 삶을 채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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