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무심코 옷장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속옷부터 시작해 웃옷은 물론 바지와 양말까지 온통 검은 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흰 색 옷이나 다양한 색깔의 옷도 많았었는데..,
흰 색 옷뿐만 아니라 색깔 있는 옷들은 땀이나 떼가 베이면 누렇게 변해,
피하다보니, 옷장에는 온통 검은 옷만 남은 것이다.
게다가 지난 겨울을 보내고,
잘 안 입는 옷이나 낡고 빛바랜 옷들을 버리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사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옷을 입을 때마다,
<좀 밝고 색깔 있는 옷을 입을까?>란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옷장을 뒤적거리다보면 결국 입고 있는 건 검은 색 옷이다.
시장에 옷을 사러가서도 이 옷 저 옷 둘러보지만 막상 사오는 옷 역시 검은 색 옷이다.
같은 값의 옷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나는 항상 줄이는 공임을 더 지출해야 했기에,
어지간하면 질기고 더렵혀지지 않는 옷을 선호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떼가 덜타는 검은 색 옷을 선호하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이젠 나이가 들다보니,
멋보다는 실용이 더 강조된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옷장 속에 온통 검은색 옷이라니 조금은 어처구니없다.
나는 단 한번도
시장에서 기성복을 사서 그냥 입어본 적이 없다.
20대에는 체중이 50㎏를 왔다 갔다 할 정도고 키도 작은 편이라 맞는 옷이 없었다.
키에 맞추면 허리가 안 맞고, 허리에 맞추면 기장이 안 맞아,
주로 허리를 맞춰 기장을 줄여 입을 수밖에 없었다.
상의도 어깨나 목을 맞춰 사면,
옷이 엉덩이까지 내려와 영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옷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크지 않다.
아무리 좋은 옷을 사 와 봐야 줄이지 않으면 맞지 않으니 옷 모양새가 제대로 나겠는가?
그래서 사람은,
모든 면에서 중간은 가야 ,
다른 사람에 비해 뒤처짐 없이 더불어 갈 수 있음이 맞다.
남들보다 부족하고 결여된 약점이나 핸디캡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그만큼 갈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약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경우도 없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통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부터라도,
조금은 밝은 색 옷을 입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살 나이도 아니고,
또 남의 말에 쓸데없이 흔들일 염려도 없지 않은가.
자신의 몸에 어울리게,
스스로 멋 부리고 산다고 해서 욕할 사람도 없고,
무슨 상가에 갈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문제는 갈수록 편안함을 찾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내가 문제이지만,
<옷이 날개>라고 가능하면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싶다.
그리고 검은 옷처럼,
어두워진 마음의 빛깔을 거두고,
좀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옷을 즐겨 입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