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겨진 자의 소망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다.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실내에는,
아침햇살이 길게 늘어서 있고, 가려진 벽 사이로,
온갖 잡동사니가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가 불현듯 필요에 의해 찾게 되는,
베란다 창고의 물건처럼 구겨지고 짓눌러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뎌왔기에,
이젠 내가 누군지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느낌이다.
먼지가 부옇게 낀 채로 옷장에 걸린 유행 지난 옷가지에 불과하다.
혼자 먹는 밥과,
혼자 보는 풍경과, 혼자 읊조리는 말들이 허공에 떠다닌다.
삐꺽거리는 세탁기 소음과, 낡은 괘종소리의 탁함이,
위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와 섞여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그리고,
방구석에 벗어놓은 양말과,
말라 뒤틀어진 방 걸레는 사람의 손길을 애타게 원하고 있지만 움직일 수 없다.
방안 어느 틈에선가 먹을거리를 노리는 바퀴벌레처럼,
어둠 한자락에 자신을 묻고 움츠려 있다.
혼자 아파하고, 혼자 귀찮아하고, 혼자 자신이 만든 늪에 허우적거린다.
때때로,
자신에 대한 질책과,
후회와, 안쓰러움에 어쩔 줄 모른다.
어둡고 침침한 것이 싫어 방마다 전등을 켜 놓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빛나고 밝은 것이 싫어 한 귀퉁이에 앉아 있다.
살아 온,
인생이 허황되고,
살아 갈 인생이 안개가,
덮인 산자락에 걸쳐 있는 다리처럼 위태로워 걸음조차 옮길 수 없다.
걸어가는 발끝에 깔린 돌들이 나에게만 도드라지고,
굳건한 뿌리를 박고 있어 쉽게 지나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도,
행복하고 기뻐하고 싶은데,
현실이란 벽을 허물지 못하고, 감정조차 하나 둘 잃어가게 한다.
사람이 사는 재미는,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무엇인가 더해지는 것일 게다.
없어진 것만큼 채워져야 그럭저럭 살아가는 재미와 의욕을 가질 수 있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 전부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늘 모호하고 선택할 수 없는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오는 미래의 불안감을 덜고 싶어 종교의 힘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픔을 느끼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남겨진 자의 몫일 뿐이다.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신선하고 유쾌한 바람 말이다.
내 인생에 낀 먹장구름을 걷어낼 수 있는 아카시아 향기를 가득 실은 그런 바람 말이다.
칙칙하고 우울한 날들을 지워버릴 수 있는 희망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통해,
날마다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바람 말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가슴 설레는 날들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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