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산행예찬(山行禮讚)

소우(小愚) 2009. 9. 14. 09:31

    대리만족이랄까?

    이것이 내가 산에 가는 이유다.

    지금까지 많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서 특별하게 내세울만한 것은 없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만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지 못하고 늘 뒤쳐져서 따라가기조차 바쁘게 살아왔다.  

 

    산의 정상에 서면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사방에 고만고만한 산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산 정상을 밟고  오롯이 나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평평한 길과 경사진 거친 길을 걷기도하고

    기기도하면서 오르지만 정상을 정복하고 그 과정을 돌아보면 그저 그렇다.

    그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결코 두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록 그렇게 한번뿐이나 이미 지나온 길은 익숙하다.

    그 산에 가보지 않고  아무리 그 산을 옳게 말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산이

   경치도 마음에 들고 등산하기에도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산이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는 힘든 여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지금도 등산할 산을 선택할 때면

    가급적 사전에 그 산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고 인지한 다음에 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그 산이 품고 있는 절경들을 놓치지 않고,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어도 알지 못하면 천하를 뒤진다 해서 찾을 수 있음도 아니고, 멀리 있어도 어디 있는지 알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산이란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성과 노력만 있으면 충분히 그 산이 주는 매력에 빠질 수 있으리라.


    요즈음은 주말이면 마음이 설렌다.

    어디의 산에 갈까?

    그 산에는 어떤 이름의 야생화가 곱게 피어 나에게 즐거움을 줄까?

    밤송이와 도토리는 입을 벌렸을까?  전번 때보다 단풍은 물들었는지? 

    바람의 심술로 안개는 끼지 않았을까?

    힘들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내게 오는 자연의 속삭임과 아름다운 빛깔의 모습을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는 이미 산에 푹 빠져 그 속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된다.

    떠날 때는 혼자라는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망설여지다가도

    막상 등산로 입구에 서면 즐거움이 앞서가고는 한다.

    어떤 길로 가면 보다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작은 바위, 나무 한그루,

    이름모를 들꽃 한 송이, 이미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마저 정겹게 보인다.

    그리고 우거진 숲 사이에 스며드는 햇살을 보는 즐거움과,

    높은 삼림사이로 언뜻언뜻 들어나는 파란 가을 하늘과,

    한가롭게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또 어떠랴?


    아마 산행을 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이 주는 신비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불면 구름 한점 없이 맑았던 하늘이 금방 먹구름으로 덮이고,

    적막이 휩싸인 숲의 나뭇잎위로 쏟아지는 소나기와 뜨거운 대지가 만나 만들어내는

    물안개가 언뜻언뜻 산봉우리와,

    절벽을 가르며 만드는 무지개는 어찌 말이나 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험난한 산행 뒤에 이런 즐거움이 숨어있음은 바로 우리의 인생살이와 무엇이 다를까?

   계절 따라 나뭇잎이 옅은 연두색에서 연녹색으로, 그리고 녹색에서 진녹색으로,

    그러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면 오색의 단풍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

    오르고 또 오르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또 그 길을 가고...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이 따끔거리고 등이 흥건히 젖고,

    때로는 돌부리에 넘어져 상흔을 남기는 산행이지만,

    숲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와 들짐승의 재롱을 보면,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즐거움이 더 크다.


    산은 그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해 내기 어렵듯이 산 역시도 그렇다.

    산이 주는 겸손이란 교훈처럼 바쁜 일상이지만 성급하지 말고 주어진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이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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