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성전
* 명륜당
* 예로부터 가운데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 향교내 은행나무
*강릉향교(江陵鄕校)
강릉향교는 1411년(태종 11)에 불타버린 것을 1413년 강릉대도판관(大都判官) 이맹상(李孟常)이 강릉의
유지 68명과 함께 발의하여 중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수하였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강릉향교는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처음 세운 후,
조선 태종 11년(1411)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태종 13년(14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는 크게 늘려지어 웅장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화부산 아래 경사진 곳에 위치하여 위쪽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보물 제214호)을, 아래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향공간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회랑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와 자사, 증자, 맹자를 모시고 있으며,
동·서무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2층 누대 형식의 건물로, 아래층은 기둥만 세우고 벽을 쌓지 않아 통로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이 외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와 부속건물 등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토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으며,
소장되었던 책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고, 현재『공부자성적도』등 70여 권만 남아있다.
현재 다른 지역의 향교는 동·서무에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였는데, 강릉향교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식 그대로 모시고 있다.
또한 지방향교로는 그 규모가 웅장한 편이고,
한국전쟁 때에도 건물이 불타지 않아 옛 규모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향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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