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삶의 낙서들

첫 눈

소우(小愚) 2008. 12. 21. 13:58

 

 

 

◇ 춘설

 

첫눈이 내린다.

비가 온 끝이라 아직 쌓이지는 않지만,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처럼 고운 하얀 눈이 내린다.

 

문득 난 눈 내리는 바다를 보고 싶어,

정신없이 차를 운전하여 안인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를 가르며 두 줄기 끊임없이 이어진 기차레일을 따라,

하얀 눈은 몸부림치듯 그렇게 한스럽게 내리고,

파도가 밀려난 바위 위로 선녀의 날개깃의 파편처럼 갈매기가 내려앉는다.

이젠 내리는 눈은,

서서히 소나무 잎 위로,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설화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괘방산 산자락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마저,

인적을 허락하지 않고 신비로운 은세계를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다.

눈이 개고 하얀 햇살이 내리는 아침에,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기 위한 신의 작업이리라.

 

이제는,

점차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은 적막강산으로 변해버렸다.

흐린 하늘은 어렴풋이 산 능선의 형체를 드러내고

난로의 빨간 불꽃이 지난날 한 조각 꿈이 되어 어린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어른이 된 뒤,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꿈은 이렇게,

하얀 눈으로 변해 우리들 마음속으로 내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온통 눈으로 채워졌던,

산골소년의 겨울 이야기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지나온 인생과 같이 세월 언저리에 얹혀있다.

 

꿩을 휘 달구고,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 덫을 놓고, 

벚나무 참나무 결 고른 놈으로 골라 썰매 만들어 타던,

집 앞 높게만 보이던 언덕은,

나의 어린시절 동심이 그린 일기장이다.

 

첫눈이 내린다.

눈보라가 세차게 분다.

어린시절에는 그저 꿈이 되었고 즐거움이 되었던,

오늘 내리는 이 하얀 눈은,

잃어버린 내 청춘의 자화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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