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설
첫눈이 내린다.
비가 온 끝이라 아직 쌓이지는 않지만,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처럼 고운 하얀 눈이 내린다.
문득 난 눈 내리는 바다를 보고 싶어,
정신없이 차를 운전하여 안인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를 가르며 두 줄기 끊임없이 이어진 기차레일을 따라,
하얀 눈은 몸부림치듯 그렇게 한스럽게 내리고,
파도가 밀려난 바위 위로 선녀의 날개깃의 파편처럼 갈매기가 내려앉는다.
이젠 내리는 눈은,
서서히 소나무 잎 위로,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설화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괘방산 산자락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마저,
인적을 허락하지 않고 신비로운 은세계를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다.
눈이 개고 하얀 햇살이 내리는 아침에,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기 위한 신의 작업이리라.
이제는,
점차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은 적막강산으로 변해버렸다.
흐린 하늘은 어렴풋이 산 능선의 형체를 드러내고
난로의 빨간 불꽃이 지난날 한 조각 꿈이 되어 어린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어른이 된 뒤,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꿈은 이렇게,
하얀 눈으로 변해 우리들 마음속으로 내리는 것은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온통 눈으로 채워졌던,
산골소년의 겨울 이야기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지나온 인생과 같이 세월 언저리에 얹혀있다.
꿩을 휘 달구고,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 덫을 놓고,
벚나무 참나무 결 고른 놈으로 골라 썰매 만들어 타던,
집 앞 높게만 보이던 언덕은,
나의 어린시절 동심이 그린 일기장이다.
첫눈이 내린다.
눈보라가 세차게 분다.
어린시절에는 그저 꿈이 되었고 즐거움이 되었던,
오늘 내리는 이 하얀 눈은,
잃어버린 내 청춘의 자화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