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자생식물원
여러분은 일상사에 지쳐갈 때 생각나는 곳이 있나요?
취향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한두 곳 그런 곳이 있기 마련일 겁니다.
그곳은 고향일 수도 있고, 한적한 숲 속일 수도 있고, 도리어 사람들 붐비는 도심의 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고향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이나 동구 앞 팽나무가 드리우는 싱그러운 그늘이 떠오를 수도 있고,
뒷산자락 풍성한 대숲의 바람 스치는 소리가 그리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제는 사라진 카바이트 불빛 혼자 밝은 뒷골목 어디의 포장마차 좌판이 안온한 분도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그런 곳 중 하나가 오대산 두터운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한국자생식물원>입니다.
이곳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고, 늘 꽃향기가 바람결에 흩날리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무엇보다 자연이 있습니다.
잘 가꿔놓은 온실들과 더불어 자연 그대로 사람의 손은 적게 들이고 있는 그대로 가꾸어온 자연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곳은 오대산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월정사 들어가는 입구 조금 못 미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446번 지방도와, 속초로 넘어가는 6번 국도가 갈라지는 지점 조금 전에,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보입니다.
그 길로 1km 쯤 들어가면 한국자생식물원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을 처음 찾아간 것이 6년 전이었군요.
언제나처럼 아내와 아이, 단촐한 가족나들이 길이었습니다.
월정사에 팔각구층탑을 보려고 찾아간 길이었어요.
지금은 훌쩍 자라 저보다 훨씬 키가 커 버린 아이가 우리 부부의 손에 매달려 달랑거리며 다니던 때입니다.
우리 식물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터라 한국자생식물원의 소식을 익히 알고 지도를 보며 찾아갔죠.
그 전에도 식물원들을 종종 찾아다녔지만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유명하다 해서 찾아가 보면 기대보다 규모도 적고 볼 것도 없는 곳도 있고,
볼 것은 많았지만 우리 꽃, 우리 식물보다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특이하거나
유별난 외국 식물들 중심으로 지나치게 사람 손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소문으로는 이곳은 그렇지 않다 하더군요.
그래서 기대 반, 설마도 반이란 심정으로 찾아갔죠.
지금은 입구도 정비되고 찾아들어가기도 쉽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처 안내판도 잘 보이지 않는 좁은 시골길을 구불구불 찾아가서
조금은 실망한 채 온실을 나와 뒷언덕으로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이는 아이의 눈높이대로 크게 재미는 없는지,
저와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다니며 이것저것 얘길 나누며, 그저 호기심만 채우기 바빴죠.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우리 가족은 걸음을 멈추고 입을 딱 벌리고는 탄성만 질렀습니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짙은 분홍빛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그 분홍빛 물결을 바람을 타고 조금씩 잔물결로 일렁이다가 짙은 꽃향기와 함께 우리 가족 위로 덮쳤습니다.
황홀한 꽃의 파도였죠.
벌과 등에 등 온갖 곤충들이 꽃밭 사이로 난 길까지 나와 윙윙댔고,
그 날개짓 소리가 귀를 멍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그 소리에 놀라 제 팔에 매달렸어요.
꽃과 향기, 곤충들의 세상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 꽃의 물결은 분홍바늘꽃이었습니다.
그 때가 7월 초였지요.
분홍바늘꽃이 그때 한창이란 것도 뒤에 알았습니다.
실은 분홍바늘꽃이란 이름도 그때 처음 들었죠.
아내가 뒤에 헤르만 헷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다가,
그 소설에 분홍바늘꽃이 나온다는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대여섯 번 읽긴 했지만 분홍바늘꽃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더군요.
올해에는 7월 중순에 그 언덕에 갔습니다.
혹시 분홍바늘꽃 무리를 볼 수 있을까 했더니 역시 꽃은 져 버리고 얼마 없더군요.
노란 꽃창포도 조금만 남아 그 노란색을 반쯤 잃어갔고,
일찍 핀 벌개미취 몇 송이, 언덕 가장자리를 타고 노루오줌과 꼬리풀만 보였습니다.
그래도 꽃이 떨어진 꽃대 끝에 조금 흔적만 남아 있는 그 분홍빛으로도 반가움이 일었습니다.
이곳은 곧 벌개미취의 땅이 될 것입니다.
8월 중순이면 보랏빛으로 화사하게 물들겠죠.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때 또 가 보고 싶지만 일상은 그리 쉽게 틈을 허락하지 않더군요.
벌개미취가 지고 나면 구절초의 세상이 열릴 겁니다.
그렇게 이 언덕은 봄부터 가을까지 사이좋게 시간을 나눠서 꽃으로 가득한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이곳에는 이 꽃언덕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온갖 식물들이 저마다 영역을 확보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7월 중순, 이곳을 찾아가서 본 꽃만도 이래저래 5~60종 이상은 본 듯합니다.
온실 등에서 고이 자란 그런 꽃 아니라 풀섶에 나무 그늘에 습지에,
그렇게 이슬 맞고 바람 맞으며 자라 예쁘게 핀 그런 꽃들요.
몇 종류의 나리꽃도, 짙은 색감의 동자꽃도, 기생초도,
꼬리풀 종류도 저마다 적당한 곳에 자리하고 우리를 반깁니다.
예쁘게 정돈된 그런 식물원을 기대하시는 분들은 이곳에 가지 마세요~!
예쁘게 단장한 그런 곳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오래 가꾸고,
사람 손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게 주의를 기울인 그런 거칠면서 아름다운 곳이 이곳입니다.
테마마다 분류해서 배치하긴 했어도
여기서부터 어디, 저긴 어디, 그런 구분도 모호한 숲 속 같고, 들판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마시는 국화차 한 잔, 커피 한 잔도 좋습니다.
저는 계절마다 이곳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 찾아오는 길
한국자생식물원은 오대산국립공원으로 가다보면,
진고개와 오대산 갈림길이 나오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지 말고 바로 오른쪽 비포장도로를 따라 약 1km정도 가면 된다.
이곳에는 병내리화예단지와 버섯재배단지가 있어 청정한 오대산의 풍요를 담고 있다.
그리고 느타리버섯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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