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상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그러나 안반데기를 직접 가보면 순수하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안반데기의 원래 지명은 '안반덕'이다.
마을이 떡메로 떡쌀을 칠 때 쓰이는 안반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그 안반덕을 오래 전부터 '안반데기'라고 풀어 불렀다.
대기 삼거리에서 왕산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다.
닭목령은 백두대간의 한 고개.
고개를 넘으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그 물은 오봉댐으로 흘러든다.
썩어들어가는 도암댐에 비해 오봉댐의 물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안반데기는 닭목령에 이르기 전 작은 삼거리에서 '감자원종장'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 해서 오르막길이다.
안반데기로 가는 안내판이 부실해 자칫 지나치기 쉽다.
안반데기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오르면 비로소 집이 보이고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이라 해 보았자 집 몇 채가 전부인 안반데기. 그러나 드넓게 펼쳐진 밭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산의 껍질만 깎아낸 팍팍한 밭은 능선을 따라 산 정상까지 정복했다.
사람들은 산을 깎아 만든 밭에 감자와 배추를 심는다.
길의 정상은 피덕령이다. 고개마루를 넘으면 동강의 주 오염원으로 알려진 도암댐이 있고, 고개 좌우로 난 길을 따라 가면 고랭지 밭으로 갈 수 있다.
먼저 좌측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갔다.
처음 보이는 곳이 끝이려니 했더만 산등성이를 올라서니 처음 본 밭보다 규모가 더 큰 밭이 만들어져 있다. 순간 '이 넓은 산을 깎아 버리다니'라는 생각과 함께 입이 벌어지기보다는 한숨이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내렸음에도 입 안으로 흙모래가 달려들었다.
서걱거리는 느낌을 애써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등성이 하나를 또 넘었다.
마찬가지로 산은 헐벗었고 흙모래가 날렸다.
먼 곳에선 이미 만들어진 밭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굴삭기로 산을 깎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다.
어느 밭엔 퇴비와 비료가 담긴 포대가 설치작품처럼 놓여져 있고, 감자를 심는 농부의 모습도 보였다. 2모작을 하는 지역에선 이미 푸른 싹들이 넘실거리는데, 안반데기는 6월이 코 앞임에도 겨울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푸른 기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안반데기에서 풍년을 바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낯설기만 했다.
밭으로 난 길을 따라 산 정상으로 갔다.
산 정상은 옥녀봉이다. 높이는 해발 1100m가 넘었다.
주변의 봉우리와 어깨를 견주는 안반데기는, 겨울이면 사람 키를 넘길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다.
늦가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안반데기를 떠나 아랫마을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올라온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안반데기는 도무지 산이라 할 수 없었다.
애초 산이었으되 밭이 되어버린 안반데기는, 한때 고랭지 산업으로 각광 받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재배한 감자나 배추는 육질이 단단하여 그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곧 불어닥칠 FTA 바람까지 가세하면, 안반데기 고랭지 밭은 언제 잡초로 무성해질 지도 모른다.
<< 춮처 :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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