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잠시 비가온 뒤,
화창한 봄 날씨에 모처럼 퇴근이 빨라,
가벼운 기분으로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하루종일 왠지 모를 답답한 마음에 빠져 있었기에,
혼자 덩그라니 집안에 머무르기 싫어 트레닝복으로 갈아입고,
마을 농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책이라 해봤자,
땅거미가 서서히 대지에 내려앉고,
호젓한 마을 농로인지라 별로 볼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삭막한 벌판이 전부다.
밭두렁에는,
일찍 싹을 틔우는 새싹들이 파스름이 머리를 내 밀지만,
아직 때가 이른듯 황갈색 덧잎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아직도 곡식의 대공이 듬성듬성 밭에 남아 황량한 느낌 마저 드는 풍경이다.
멀리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붉그스럼한 태양 이외에는,
그저 싸늘한 바람 마저 은근히 불어오고 있다.
바둑판 처럼 이리저리 갈라진 갈림길이 나오자,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서성이는 동안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한 분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그 어르신을 따라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니,
평소 자신의 걸음걸이와 관계없이,
어르신의 걸음걸이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쭉 걸어가야 할 길을, 어르신의 발걸음만 따라가다 보니,
그저 어르신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갈 뿐이었다.
머리속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도 없이,
남들이 보기에는 함께 산책하는 동행자처럼,
같은 공간에서 가야할 방향도 정하지 않고 정처없이 30여분을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상쾌해지고 기분 마저 시원하게 확 뚫린 것 같다.
무엇 때문에,
나의 마음이 답답했을까?
무엇 때문에 내가 어르신을 따라 간 걸까?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 가는 것처럼,
무아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내가 마치 자폐증에 걸린 사람처럼,
내게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민과 두려움에 빠져,
스스로를 마음속에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나그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도, 걸어가는 의미도 없이,
그저 내가 살아 온 과거의 흔적을 의지한 채,
미래를 재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잘 드는 칼이 주어지면 처음에는 날카로움에 절로 흥겹지만,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 그 날카로움이 사라지면,
자신도 모르게 칼에 의존했기에 오히려 요리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IQ가 높다고 하여,
성적이 오르고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도 아니며,
돈이 많다고 하여 마음 마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와 생각이나 행동을 자신의 의지하에 두느냐에 따라,
불행도 행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자신의 마음 먹기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길이란,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자취이며 과정이다.
때문에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발길이 새로운 출발점 일수도 있는 것이다.
험하고 두렵지만 언젠가 나 역시 내가 따라간 노인이 될 터인데,
나 역시 나의 걸음을 따라 올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오늘도,
땅 속 깊은 곳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음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