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평상시는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
어쩌면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살기에 행복을 느끼고 사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조금씩 지우면서 산다는 사실을 평소에 인식하고 산다면, 삶이란 자체가 얼마나 슬프고 허망할까?
생명은, 어느날 불현듯 자신의 하얀 귀 밑 머리카락과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서 늘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공기가 유영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과 같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기쁨을 기쁨 그대로, 슬픔을 슬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히게 느끼는 시점은, 대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부모님이 아프거나 돌아가시고,
지인들이 한 두명씩 건강을 잃고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인 것 같다.
사람은 평등하고 스스로 존귀한 존재이기에 생명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다 같아야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교에서는 작은 미물일지라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했다.
또한 성경에서는 "죄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와 같다."고 했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죽음이나 정조의 죽음처럼,
역사와 국운의 성쇠를 좌우하는 죽음은, 미래 사람들의 삶이 함께 좌우되기도 한다.
또 자신이 느끼는 슬픔의 크기 역시 부모.형제나 지인의 죽음이, 모르는 타인의 죽음에서 느끼는 아픔과 어찌 동일할 수 있는가?
죽음의 생명의 소멸이요, 세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살아 생전의 생각과 정신은, 연연이 이어져 새로운 생명의 가치를 창조한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삶을 충실하게 살아 왔는지는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상객의 면면을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사람의 생명에 대한 삶의 척도로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상의 존재가치는 자신에게서 출발하기에 스스로 생명을 죽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자학하는 우울한 생각이나 삶에 대한 스트레스 보다는,
자신의 생명에 향기를 줄 수 있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과, 무리가 가지않는 건강한 육체의 단련을 통해,
스스로가 건강한 정신을 갖을 수 있도록 항상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과거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스스로의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과거에 매달려 과거의 삶을 회상하면서 안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잘못하면 과거가 스스로의 삶을 조이는 족쇄가 되고, 스스로를 가두는 우울증에 빠져들기 쉽다.
과거의 일은 과거대로, 옷깃에 묻은 먼지를 털듯이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하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조금 못한 주변의 사람을 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위로할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한 것이다.
경험이 많다고 하여 경험에 집착하면 오히려 결단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가 적절하게 조화되고, 경험과 새로운 미래가 함께 갈 수 있어야 진정한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이란 놈이 사라지면 자신에게 오는 행복과 기회 조차 잃어버리기 십상이기에, 항상 꿈과 새로운 희망을 가슴속에 키워야 한다.
자신이 만든 허상에 자신을 가두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건강한 정신을 키우는 노력을 하라.
슬픔은 �게, 기쁨은 두 배로 늘일 수 있도록 항상 기뻐하고 웃을 것, 이것이야 말로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어떤일의 원인과 결과는 항상 자신에게 있다.
그렇기에 문제의 해결점 역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일 역시 자신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면 결국 스스로가 가벼운 존재가 됨을 자명하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는 것, 이것이야 말로 생명의 무게를 올바로 지키는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에게도 생명의 향기를 주는 일이다.
스스로가 즐거우면 주변이 즐겁고, 스스로 행복한 웃음은 주변 모두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