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람처럼 스쳐가기를
◆◇ 그냥 바람처럼 스쳐가기를
어느 누가 늙음은 추하다 할까?
얼굴의 주름 하나가 거친 삶을 헤쳐 온 산경험이며,
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바로 만고풍상을 이겨낸 자의 삶의 표상이 아닐까?
거친 피부와 주름 가득한 얼굴, 침침한 눈과 잘 들리지 않는 귀,
세월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늙어갈수록 늘어나는 건 걱정거리뿐이다.
아직 살만한 나이인데 암에 걸려다느니, 누구누구는 병든 부모 때문에 고생한다느니,
들리는 소식마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들이 더 많아 마음이 복잡하다.
또래의 사람들과 모이면 노인으로 살아야하는 여생에 대한
고민들을 서로 푸념하듯 늘어놓곤 한다.
살아도 삶이 아닌 시간을 말이다.
사람은 존귀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도 힘 있고 건강할 때 얘기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리는 신세를 어찌 감당할까?
시도 때도 없이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시설에 모실 여력이 없으면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나몰라 할 수 있을까?
돈 없이 아프면,
모두가 견디기 힘들다.
막상 늙어 본인이 그렇게 살아야한다면,
아마 한사람도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은,
본인이 희망하면 안락사라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터인데 말하기도 한다.
설령 원하지 않더라도 삶이 희망이 아닌 고통이 되는 시간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혼자서 대비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홀아비마음은,.
홀아비가 되어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을 기다리는 부모의 고통 역시 같은 처지가 되어야 비로소 실감할 것이다.
죽음으로 이별할지라도 원망보다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부모에 대한 것은,
언제나 그리움과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구나 부양에 올-인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고생하신 부모님의 병마에도,
늘 곁에서 삶을 같이하며 도움을 주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항상 일을 도와주던 직장동료의 안타까운 사연에도,
그저 눈물 한 방울, 위로의 말 한마디가 전부다.
은혜나 도움 역시 모두가 한순간 뿐,
현실을 핑계로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
평생 후회할 일을 지나치며 사는 것이다.
삶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젊게 살려고 마음먹어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핑계일 런지는 몰라도 분명 사회적 경제적인 벽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 맞게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운명처럼 닥쳐올 나의 노년의 삶도,
마치 한줄기 바람처럼 스쳐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