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 대한 나의 아쉬움
◇ 친구는 내 마음 속의 휴식처이다.
언제부터인가 난,
동창 모임에만 가면 돌아오기 바쁘다.
왜냐하면 회사사정상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없다고 무슨 일이 있을까 만은, 모임을 핑계로 홀로 쉰다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그것은 책임감이 투철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좀 고쳐야하는데 잘 안 된다.
예전에는 친구라면 만사에 우선이었다.
심지어 급한 일도 미뤄놓고 친구와 우정놀이에 치중된 일상이었다.
그래서 그런 나를 보고 와이프가 즐겨하던 말 중에 “당신 친구가 마누라보다 중요하냐?” 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젠 조금은 철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돈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해보면 왠지 모르게 들러리라는 기분이 자주 들곤 한다.
모든 모임이 다 그렇지만 동창들의 모임도 마찬가지다.
소위 사회에서 인정받고 활동하는 돈 많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 의해 운영됨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보니 초록은 동색이라 그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친구들은,
점차 모임참석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모임 초기 기금이 적을 때는,
모임의 취지를 맞춰 친목과 단합을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 정도 모임이 활성화되면 꼭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물론 동창회를 기반으로 한 동창의 성공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동창이 곧 친구라는 등식이 성립되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사정으로 같이 하지 못하는 동창도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물질만능시대에서 무슨 모임이든지,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개인 사정으로 늘 참석하지 못하면서 지적만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친구의 사정까지 살펴 배려주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어느 동창회나,
그 동창회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다.
기금이 쌓이고 활성화되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마치 주인처럼 행세하는 시림도 생긴다.
친구가 동창이고 동창이 친구라고 동창의 틀을 깨는 지나친 문호개방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친목과 화합을 헤치는 일이다.
무엇보다 동창회의 운영은,
공정한 의사결정과 정확한 의사소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회원들의 화합을 통해 모교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어쨌거나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은 언제 만나도 늘 편하다.
그렇기에 시골 작은 학교 동창회의 존속은 고향이라는 그리움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30~40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찾아가도 흔쾌히 반겨주는 사람이 있음은,
어쩌면 행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학생수가 적어 폐교의 위기에 처한,
고향의 모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친구와 추억과 편안한 분위기는, 언제 참석해도 항상 행복을 담보해주는,
내 마음 속의 영원한 휴식처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