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오늘 나 자신에게 이렇게 조그만 물음표를 던져본다.
그저 사는 것이 전부였던 젊은 날엔,
매일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하루하루가 무슨 큰 의미가 있었으랴?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 상황이나 작금의 처지를 떠나,
왠지 모르게 내 자신에게 이런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지금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겨서이다.
젊은 날에는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봐도 가슴에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나이가 들었음을,
건강에 대한 적신호를 느낄 즈음에는, 죽음이 늘 나의 곁에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된다.
삶의 훈장과도 같은 고생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병마로 변해,
고통스러워 하는 부모의 모습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각종 암으로 수술한 친구나,
요양원에서 연명한 하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그러한 삶을 보게 되면 늘 생각나는 게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다.
분명 나 역시 세상으로부터 무엇인가 할 일이 주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내게 주어진 세상의 소명조차 찾으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게 맡겨진 그 소명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 찾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점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는 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다.
사람은 <보는 만큼 알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처음 간 길은 멀고 힘들지만, 이미 가 본 길은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스스로 보고 겪지 않으면 마음에는 진정 와 닿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로, 고통과 시련과 아픔과 눈물을 통해 마음에 각인되어야,
그 삶이 비로소 내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삶이 내 인생이 되어야,
진정 내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 않나 싶다.
뒤를 돌아봄은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 원망하고 탓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젊은 날에는 알고도 지나쳤던 <죽음은 늘 곁에 있다.>라는 말을 실감하기에,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신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굳이 무슨 소명이니,
의무나 책임을 떠나서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다.
알다시피 죽음 뒤에 남는 건 돈이나 재물이 아닌 명예요, 이름이며 기억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자신할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린 과연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사람냄새 나는 하루를 살고 있는가?
혹여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도,
정작 그렇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우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면서도,
늘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마간산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자신을 향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란 물음에 왠지 마음이 아픈 것이다.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