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삶의 낙서들

자기 안에 사는 사람

소우(小愚) 2014. 12. 11. 12:59

 

     ▷▷▷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때 사람은 슬퍼진다.

 

     참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기란 어려운 것 같다.

     가능하면 즐겁게 살려고 애써도 왜 그렇게 걸리는 게 많은지.......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서 슬프고, 능력이 모자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서 슬프다.

     말을 길게 하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언쟁이 되어버리고,

     오해를 풀고자하는 진심의 말들이 도리어 변명이 되어버린다.

 

     갈수록 이런 기분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반복되다보면,

     결국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공연히 자신감이 없어지고 마음이 불안해져 대수롭지 않은 일조차 쉽사리 넘어가지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저 혼자 아파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배신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자기 안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를 즐겨하며, 그 결과 상대적으로 부족하거나 모자라면 스스로 견디지 못해 한다.

     분명 더 나은 것들도 있으련만, 감사나 만족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에 대한 원망만 가득하다.

     세상 모든 일이 하찮고 그 결말이 뻔한 듯싶어, 어지간히 기쁜 일이 아니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만사가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슬퍼지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내가 아닐 것이다.

     비록 몸의 성장에 따라 모습이 변할지라도,

     시간과 더불어 삶과 함께해온 추억마저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기에 그 어떤 수단을 쓸지라도 이미 겪은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이별과 눈물,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모두가 슬프다. 

 

     세상의 어느 누구 슬픔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마치 팔자소관인 듯 습관처럼 거듭되는 실패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실패는 그저 삶의 과정일 뿐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피폐한 마음까지 치유하기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 그 실패의 기억이 옅어지고 아물어갈지라도,

     실패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일 수밖에 없다.

     비록 남들은 이해하고 용서할지라도 나 자신은 실패의 기억 속에서 허덕거리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말은 지금의 곁 모습만 살피는 것이 아니다.

     소위 <너 자신을 알라.>라든가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라는 현실인식을 의미한다.

     가정이나 직장 또는 사회에서 지금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자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으로 만족하면 좋은데,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때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열등감에 매몰되어, 자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모자람에 대한 슬픔만 더 크다는 것이다.

 

     자기 안에 사는 사람은 늘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에 대해서, 질투와 비난과 화를 들어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별 탈 없이 살아가는데,

     왜 나는 아등바등 살아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불만을 참고 견디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혼자가 더 편하다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자기 안에 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