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小愚) 2014. 5. 31. 10:31

◆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 믿음직하고 깊다.

 

누나에게는 늘 꽃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누나의 집 화단은 지금도 각종 꽃으로 가득합니다.

커다란 꽃밭에는 요즘 유행인 다육을 비롯하여, 할미꽃 제비꽃은 물론 꽃나무도 즐비합니다.

거의 사계절을 꽃과 더불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화훼전문가도 아닌데 참으로 신통방통 잘 키워내십니다.

 

누나가 특히 좋아했던 꽃은 과꽃이었죠.

누나는 그 과꽃을 얻기 위해 산너머 재를 넘어 모종을 얻어 와,

빨래터가 있는 개울가나 길가로, 꽃을 심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심었습니다.

코스모스와 분꽃과 봉숭아를 심었고, 화장실 주변으로는 키다리와 다알리아도 심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은 비록 낡고 초라했지만, 집안은 늘 꽃향기로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생각납니다.

봉숭아꽃이 피면 손톱에다 봉숭아 물 드리겠다고 도망치던 나를 쫒던 누나가 말입니다.

도망치다 붙잡혀 결국 다섯 손가락 빠짐없이 물들이고 어쩔 줄 몰라 했던 추억에 절로 웃음이 납니다.

심술부리느라 키다리와 다알리아 꽃은 따서 재기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누나의 모습만 떠올려도 행복합니다.

 

누나를 보면 내리사랑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합니다.

어쩌다 누나의 집에라도 갈라치면 항상 바리바리 싸주시곤 합니다.

봄이면 틈틈이 뜯어서 삶아 얼려놓은 산나물, 가을이면 애써 농사지으신 김칫거리는 물론이고,

겨울이면 당신이 먹으려고 담그신 김장이나 장도 넘칠 정도로 듬뿍듬뿍 담아주십니다.

단지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난 어렸을 때 누나와의 추억이 참 많습니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부모의 농사일을 도왔던 누나는 틈틈이 인근 산에 많이 갔습니다.

용돈은 꿈도 못 꾸었던 시절이라, 산 약초와 더덕, 두릅 그리고 산나물을 모아 장에 내다 팔곤 했습니다.

비록 봄이면 산나물이 흔해 비록 값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쏠쏠했습니다.

그런 누나도 혼자서는 산이 무서웠던지 자주 나와 함께 했습니다.

 

나물 뜯는 재미에 취해 골짜기를 따라가다 길을 잃을 때도 있었고,

가재를 잡다 어둑어둑해져 돌아와 농사일을 돕지 않았다고 부모에게 종아리를 맞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먹이용 풀(꼴)을 마련하러갔다 늦게 돌아오면 늘 마중 나와 주시곤 했습니다.

자주 아프셨던 어머니를 대신하던 누나 주변에서, 나는 아궁이에 불 피우고 물을 길러주는 등,

사소한 잡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아직도 그 시절 기억이 선명하고,

지금도 그 사랑은 이어지는데, 나는 그 은혜를 이렇게 마음으로만 헤아립니다.

진정으로 그 고마움을 안다면 휴일 날 농사일을 도우려 달려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결국 내 몸만 염려하고 내 사정만 헤아려 애써 외면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도 믿음직하고 깊다.>라는 과꽃의 꽃말처럼,

누나의 그 깊고 변함없는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