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
요즘 춥다는 핑계로,
너무 집안에서만 뒹굴었더니,
그동안 등산으로 뺐던 뱃살이 고스란히 다시 돌아왔다.
작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올 해는 유난히 겨울산행이 부담스럽다.
요즘 들어 날씨가 추워서인지 조금만 무리해도 관절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가뜩이나 고혈압이라 뇌졸중이나 협심증 같은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나에 대한 변명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동심의 순수함을 잊고 산지 오래다.
사회적 정의나 도덕적 가치조차 삶의 이익 앞에 내팽개친 지도 오래다.
피를 나눈 형제나 절친한 친구일지라도 내가 살아가는데 불편하면 외면과 배신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살아온 나의 삶들이 나에게 있어 행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이 되었음을 느낀다.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고 살았어도,
그리 달라질 삶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저 혼자 사는 것처럼 했을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상만사 모두가 그저 무덤덤하다.
그래서 때때로 무엇인가 자극적인 것들을 찾지만 그 조차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올해는 좀 나아지겠지 하다보면 벌써 1년이 지나 12월을 맞이하는 해가 늘어만 간다.
무엇인가 할 일도 많고,
걱정도 한아름 안고 살지만,
막상 시작도 하지 못하고 또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만사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정말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세상살이라는 게,
좋은 것은 묻어지고 나쁜 것만 들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비단 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아무리 물질적 정신적으로 커다란 도움을 받아다 손치더라도,
다툼이나 갈등은 언제나 현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작은 불편이나 손해가,
과거에 받은 커다란 은혜를 이기는 몰상식이 연출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과거에 도움을 준 사람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것을 용납한 사람은 없다.
뭔가 달라지기를 원하면서도 난 늘 현재에 머물러 살고 있다.
아주 작은 것조차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는 너무나 협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런 삶을 경계하면서도,
막상 내게 손해를 끼치는 상황이 오면 응당히 먼저 싸우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왠지 가만히 있으면 지는 것 같고 마치 손해를 본 듯한 기분에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대방이 눈에 들어올 즈음이면 아차하고 후회할 경우도 수두룩하다.
남은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스스로 교만에 빠지지 않는다.
반면교사는 남의 부정적인 것을 교훈으로 삼아 스스로를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이기적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남의 행동은 늘 부정적이고 고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인정한다고 하면서 마음 한구석으로는 무언가 묘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의 삶을 인정해야 함을 알고는 있다.
타인의 삶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무슨 행동을 해도 마음에 찰리 없음도 안다.
나의 시각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과 관점에서,
나의 부복함과 모자람을 고쳐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늘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은 달라져야,
나뿐만 아니라 주위 모두가 행복할 터인데 왜 그리 세상 탓 남 탓만 하려는 걸까?
부디 올 한해는 지난 삶을 반면교사로 삼아,
조금이나마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