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삶의 낙서들

억새처럼 저 홀로 흔들리면서

소우(小愚) 2013. 11. 1. 14:31

 

 

 

    ◇◇ 가을억새처럼 저홀로 흔들리면서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을억새를 닮아가는 것 같다.

     청춘의 짙푸른 빛이 사라진 곳엔 어느새 메마르고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몸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작은 바람결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을 사는 지도 모른다.

     말이야 늘 의지견장 한 듯 내세우지만 이익이 되는 일이나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기합리화 하는 하루하루를 산다.

 

 

 

 

     일들을 돌아보면 모두가 안타깝고,

     사람을 돌아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만큼 가슴 한쪽이 시리다.

     그러나 계절이 겨울을 향해 흘러가듯이 나는 그렇게 겨울을 기다리듯 살아가야 한다.

     지나 온 발자국을 지우기보다는 그 발자국이 나의 인생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에 순응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이듯,

     이미 지나 온 것들은 그저 이력일 뿐 진정 내 삶이 되지는 못한다.

     이렇게 나의 삶은 종착역을 향한 서러운 몸짓을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지견장하게 살고 싶지만 난 늘 다짐에 그친다.

     왜 그렇게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많은지,

     왜 그렇게 한스럽고 원망스러운 것은 많은지 투덜거리며 산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딱히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내 삶을 방해해도 그 모두가 미움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제발 조금만이라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조급해하는지 모르겠다.

     가을 날 들녘에 저 홀로 흔들리는 가을억새처럼 살아도 그만인 것을 말이다.

 

 

 

 

     사람과의 인연은,

     때로는 행복을 선물하지만 또 때로는 불행도 가져다준다.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는 싸울 일도 말할 내용도 풍부하지만 ,

     한편으로는 친한 거리만큼 요구사항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체면도 차려야하고, 자존심도 지켜야하고,

     도움도 베풀어야 하고, 사랑과 관심도 줘야 한다.

     물이 필요하면 물도 줘야하고 배가 고프면 밥도 챙겨줘야 한다.

     그래야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은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일방적인 요구나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때마다 오해와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사람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때로는 긍정으로, 때로는 부정으로 그 삶에 더해져,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스스로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인생의 주인이라기보다 하인으로 산 날이 더 많았음을 자각하게 된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 했음에도,

     돌이켜보면 어떠한 것이 내 삶이었나 싶다.

 

     마치 가을억새가,

     거친 바람을 견디기 위해 흔들림에도,

     나는 그 흔들림조차 비난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남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 인양 믿으면서 말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바람을 맞으며 가을 억새는 오늘도 흔들릴 것이다.

     나 역시도 가을억새처럼 흔들리면 살았던 날들이 중심을 잡고 산 날들보다 많았을 것이다.

     이 모두가 이익을 쫓아 표리부동한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옳음이나 그름조차 분별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제는 겨울을 맞이하는 저 가을억새처럼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