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小愚) 2013. 8. 22. 09:53

 

 

전번 주에 영월 법흥사가 있는,

구봉대산 등산을 갔다가 정말 황당한 상황에 처했었다.

그 사연인 즉은. 법흥사 앞 구봉대산 산행을 마치고, 마지막 여정으로 법흥사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적멸보궁은 법흥사를 벗어나 약 1km 정도 사자산 중턱에 위치한 관계로,

법흥사 경내를 돌며 관람과 촬영을 한 뒤 적멸보궁에 도착하여,

사진촬영을 하려고 했으나 전원이 아예 켜지지 않았다.

분명 적멸보궁 입구에서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채 20여분도 안되었는데 말이다. 

 

<밧데리가 다 소모되었겠지.>하는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충전을 해봤으나 여전히 OFF상태다.

그저 주머니에 넣었을 뿐, 고장을 일으킬 충격을 줄 어떤 요인도 없었는데,

고장이라니 참으로 황당했다.

 

수리를 하려고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수리비가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라 결국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해야 할 처지다.

그래서 요즘은 핸드폰촬영도 많이 하는 터라,

기왕이면 카메라를 구입할 바에는 스마트폰을 구입할까 싶었다.

 

무슨 요금제나 스마트폰 종류는 그리 많은지, 

그리고 스마트폰에 관련된 용어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무슨 사법고시를 보는 것도 아니고 판매자의 설명을 들어도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들은 좋은 냉장고 하나 구입할 돈을 핸드폰 구입에 망설이지 않고 척척 구입하는데, 

솔직히 사무실 책상에 컴퓨터와 전화기가 있어 스마트폰이 그리 절실하지 않아,

난 선뜻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퇴근하여 집에 가면 스마트폰 때문에 무척이나 짜증스럽다.

집에 들어가 아들녀석을 보는 첫 모습은 쇼파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구부정한 모습이다.

공부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가면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간다.

타이르고 충고하고, 화를내고 짜증을 내도 그 순간뿐이다. 

그래서 이젠 아들녀석조차 보기 싫을 때도 있다.

 

그리고 요즘 문명이기에 너무 의존해서인지,

정성이나 마음이 깃든 것들에 대해 너무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은 카톡이나 밴드와 같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끼리끼리 문화가 생겨,

더더욱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경조사도 문자메시지 한통이면 그만이고,

각종 모임이나 안부인사도 문자로 대신한다.

이럴 때마다 인간관계를 위해서 사고 싶을 때도 있으나,

2년의 약정기간동안 백여만 원을 추가 부담한다는 것도 싫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싫은 건 핸드폰으로 인한 가족간의 소란스러움이다.

 

통신비의 과다지출은 차지하고도 핸드폰 중독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간의 대화의 단절도 큰 문제다.

어떤 날은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저 혼자 키득거리고 있다.

 

불러도 물어도 묵묵부답이고,

어쩌다 가족여행이라도 한답시고 나가도,

차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핸드폰에 열중이다.

게다가 핸드폰을 검색하면 거의 다 알 수 있기에 직접 땀을 흘리며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 뛰어들지 않는 한,

세상은 나를 위해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컴퓨터나 핸드폰과 같은 문명이기들에 의해,

진리와도 같았던 삶의 지혜나 경험들이 사라지고 있다.

 

부모로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자식들에게 알려주고픈 삶의 경험들이 그저 잔소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인도할 어른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핸드폰은 어른들의 위기이자 가정의 위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