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있을수록 마음은 가까이 보인다.
▶▷ 마음의 거리감은,
남이 아닌 바로 내가 만드는 것
뭐라고 말을 할까?
뭐라고 그 이유를 설명할까?
옆에 늘 있는 사람처럼 그저 지나치면서 인사를 했을 뿐인데.......
늘 함께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조차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꼭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걸까?
요즘 내가 조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내게는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아픔이 될 경우도 있음을 말이다.
어쩌면 너무 상대방을 배려하는 소심한 처사일 런지는 모르지만,
가급적이면 함께 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서다.
말이 많다보면 본의와 다른 말을 할 수 있고,
또 상대방의 단점이나 잘못을 끄집어내는 우를 범하기 쉽다.
생각 없이 떠들다 아차 하는 실수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말을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에서 보듯이,
바라는 것들을 묵묵히 지켜만 가도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닮아가듯이 말이다.
<고맙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믿는다.>라는,
긍정의 말을 통해 모난 성격들이 둥글궁글해졌으면 좋겠다.
만날수록 편안함이 묻어나오는 자상하고 멋진 어른이고 싶은데 그것이 기대만큼 잘 되지 않는다.
찡그린 얼굴보다 많이 웃는 일상을 지내고 싶다.
모든 것을 혼자,
다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찌 주변의 수많은 일들을 다 알 수 있으며,
또 그 일들이 자신의 주관 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반드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내버려두자.
믿고 말을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본말이 전도되어 공연히 구설수에 오르내릴 때도 많지 않은가?
내가 없었을 때까지 배려받기를 욕심내지 말자.
경치는 멀리서 볼수록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떨어져 있을수록 마음은 가까이 보인다.
평소 늘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듯이,
사람의 마음도 가까이 있을 때는 그 마음을 잘 헤아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 헤아리기 때문이다.
마음의 거리감은 남이 아닌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