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나이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그르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세월을 느끼는 감정 역시 조금은 조급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올 겨울처럼 일찍 찾아온 추위나 꽁꽁 얼어붙은 경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 메말라버린 내 마음 탓일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의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그동안 신세를 진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보답할까 하는 막막함도 커져 갑니다.
감사의 메시지라도, 아니면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캐롤 송과,
휘황찬란한 불빛들 너머의 어두운 골목길.......
늦을세라 어김없이 망년회의 일정을 알리는 전화와 문자메시지들.......
비틀비틀 흔들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
그것이 나의 책임과 의무인양,
이리저리 체면치레하다 빈지갑을 보면서 느끼는 후회스러움과 허망함.......
정작 소중한 가족과는 조촐한 식사자리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면서,
그동안 도움 받은 사람보다, 공연히 힘 있는 사람만 찾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나는 항상 이렇게 12월에는,
자신의 가치조차 지키지 못한고 그저 떠밀려가는 삶을 하루하루 보냅니다.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최면을 걸 듯 애써 합리화시키면서 말입니다.
삶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때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사정에 따라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내 마음의 불편함이 있기에,
살아오는 동안 그 불편함을 채워주었던 도움들이,
감사함과 고마움으로 자라나 그리움이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그리움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문득 내가 간 길을 돌아보면,
나 역시 무의식중에 그 사람이 간 길을 따라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원망과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 역시,
옅어져야 함에도 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가 봅니다.
사람이 떠나간 빈 자리에서 지울 수 없는 추억들을 그리워합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함은 그 사람이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어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서로의 느낌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방적인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모임자리에서,
30여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그동안 많이 생각났었는데” 라고 했더니,
“아니 왜?”라는 의구심을 들어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보고 싶었다.” 라고 하자,
“맞아 맞아 아!! 내가 그랬었구나.” 하고 수긍합니다.
이처럼 그리움은,
나에게 어떤 의미나 영향을 준 사람에 대한,
감사의 인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만의 가치, 나만의 삶, 그리고 나만의 의지,
그렇게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 사람과 여정을 함께 해 온 것입니다.
기뻐서도 찾고, 슬퍼서도 찾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해서도 찾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 명 두 명 친했던 사람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나 역시 잊혀지고 있음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12월이 되면,
하루하루 막다른 골목에 내동댕이쳐진 사람처럼,
그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