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인가 보다.
어휴 춥다.
오늘은 잔뜩 흐려서 그런지,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싸늘한 한기가 밀려든다.
사무실에서도 벌써부터 난로를 켜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들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까 싶어 버텨보지만 춥다.
이젠 사계절이 뚜렷하던 날씨도,
봄과 가을은 언제 지나가기나 한 듯 사라져버리고,
그 뒷자리로 겨울만 존재하는 듯 하다.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벌써부터 추위까지 닥치니,
올 겨울나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을 것 같다.
가을비의 느낌은 왠지 쓸쓸하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 뒤 남은 가지의 쓸쓸함을 안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일게다.
아직 찬 서리를 맞이할 나이는 아닌데 왜 이리도 가슴 한 구석이 시려 오는지 모르겠다.
병원 갈 일이 잦아지고 계절마다 경조사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나 청첩장은,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일상을 부채질하곤 한다.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고 지나치기에는,
앞으로 겪어야 할 닥쳐올 일들이 걱정이라 그조차 외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날씨가 마치 지금 50대 중년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봄이나 가을처럼 평탄한 삶을 살아가기 원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처럼 기복이 심한 날들이 많다.
젊은 날에는 그런대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중년이 지나면 가족조차 생각이나 가치가 대립되는 경우가 넘쳐난다.
그렇게 원수진 듯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섭섭해 하게 되는 것 같다.
조금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참고 넘어가면 그만인데,
그러기가 참으로 어려우니까 말이다.
현실적으로 50대가 되면 버는 것보다 쓸 일이 더 많다.
젊은 날에 어느 정도 돈을 저축해놓지 않으면 결국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50대에는 자식들이 대학을 다니거나 일찍 가는 사람은 결혼도 할 나이라,
돈은 한강에 돌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부모의 부양문제도 있고,
모임이나 경조사 같은 사회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돈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면,
얼큰한 두르치기에다 막걸리 한 잔이 그리워진다.
일요일만 되면 운동이랍시고,
이 산 저 산 찾아다니지만 솔직히 때로는 마음의 위로가 필요해서다.
산의 정취에 빠져서이기도 하지만 산을 오르기 위해 산과 힘겹게 씨름하다보면,
고민할 시간조차 훌쩍 지나가버린다.
물론 그렇다고 그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50대의 삶이란 대추나무 연 걸리듯 고민을 주렁주렁 달고 살 나이가 아닌가?
어차피 외면할 수 없을 바에는 당당히 마주서서 이겨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가면 또 그렇게 추억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어제 TV를 보다 무척이나 공감되는 말이 있었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그 사랑이 처음이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이별의 고통을 잊기 위해 좋은 것으로 덧칠한 결과라는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어진 삶을 부정하기보다는 행복하다 여기며 사는지도 모른다.
추우면 옷깃을 여미듯 아파도 밥은 먹어야 하고 집을 나서면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듯 말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