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것
지극한 사랑일수록,
내 마음을 떠나지 않기를 소망해도,
시간은 또 그 사랑을 데려가 버립니다.
너무나 힘들고 아픈 지독한 사랑이라 한시 빨리 떠나가기를 원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랑마저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은,
원하는 것도 원치 않는 것도,
지속적․ 반복적으로 겪을수록 익숙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순응으로, 또 때로는 체념으로 말입니다.
아마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나 감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일상을 함께하지만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은 힘들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어 줄 때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의 각오도, 커다란 이익 앞에서는 도움의 무게를 저울질 하게 되고,
심지어 배신도 서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내게 주어질 이익이란 당근 앞에 무릎은 꿇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얄팍함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과 우정이란,
정(情)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것은,
아마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평범하며 아주 사소하여 그냥 지나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린 대부분 이러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인들의 사랑이 아닌 모정이나 부부애,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 동료간의 배려심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나 물과 같이,
나와 일체감을 이루고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지만 나에게만은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내 곁에 나와 함께 있어줘서 나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라는 인연의 정당성처럼,
익숙한 것들은 어처면 나와 같은 속성을 가졌거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와 반대로 무엇인가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 또한,
나의 생각이나 가치에 반해서일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만드는 것도 결국 자신입니다.
익숙함이 지나쳐 아예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고 처음부터 어색하게 다가가서도 곤란합니다.
생각을 좁히고,
마음의 거리감은 줄이는 것은,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다가서는 방법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 사람의 잘못을 꾸짖기 전에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함정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도 함께 해주리란 믿음에 대한 착각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고 입장이라는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색함은 이렇게,
나만을 생각하고 당연한 것이라 믿고 하는 행동이,
지나쳤음을 알게 될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항상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더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는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사랑이나 우정이나,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관심입니다.
관심은 마음의 열의를 갖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단지 자주 봐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 없는지 도와줄 것이 없는지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사랑하니까, 함께 사니까> 하는 당연함이 아니라,
<사랑해서, 함께 살아줘서>고마워하는 마음의 정성입니다.
항상 익숙함이,
어색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익숙한 것일수록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