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라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상하리만치 혼란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란 삶에 대한 물음이다.
사랑을 위해서,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 또 그도 저도 아니면 나를 위해서...
그렇다고,
무슨 철학적인 답변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왠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 자고 나면 다가오는 내일은 뭔가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가슴에 담고 살았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 때는 무슨 대단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에 바빴는데 말이다.
요즘은 늘 반복되는 일상에 <그럴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사에 의욕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고,
굳이 더 살아보지 않더라도 나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그것은 나의 노력으로도,
어찌하거나 바꿀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하루를 아무 일 없이 보냄을 위안삼아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가장 큰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음을 인정할 때다.
주어진 삶이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그 일을 함으로써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조차 기대할 수 없다.
누군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가능하면 일상을 부정보다 긍정을,
슬픔보다 기쁨을, 원망보다는 즐겁게 생활하고 싶지만,
막상 삶과 마주서면 쿨하게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저것 내 눈이 , 내 손이, 내 마음이 가지 않으면 불안해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어려움도 서로 나누면 가벼워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움을 나눌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누기 위한 대화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친한 사람일수록,
형편을 너무나 잘 알기에 도리어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 지고 가는 짐이 더 편할 때도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때때로,
시간을 돌려서라도 어려움일랑 빨리 넘겨버리고 싶다.
그러나 인과(因果)는 항상 본인의 행위에 따라오는 결과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즉, 무슨 일을 도모하다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비난할 수 없음도 모두 내 탓인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때때로 우연찮게라도,
내게 행운이라도 찾아왔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품고 싶다.
왜냐하면 요즘은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들이,
너무 힘들고 절박하게 느껴지기 날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