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면 쌍계산천마을
◆◆ 옥계면 쌍계산천마을
참으로 오랜만이다.
예전에 석산관계로 직장 동료와 같이 이 마을을 찾아온지 대략 17~18년이 지난 것 같다.
사무실에서 취미삼아 키우던 풍란들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주고 이젠 몇 분 남지 않아,
풍란을 붙일 돌을 찾을 겸 가는 산계마을은 오랜만에 자가 운전으로 찾아가는 길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난관이 부닥쳤다.
네비게이션만 믿고 있었는데 옥계면 산계리를 검색해도 위치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먹은 일을 포기하기도 아쉽고 해 무작정 옥계로 출발했다.
옥계에 이르러 밭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어르신을 만나 산계 가는 길을 물으니 한라시멘트공장을 지나서란다.
한라시멘트 공장을 지나 직진하자 시내를 따라 잘 단장 된 산계마을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도로포장과 제방공사를 하지 않는 개울에서, 민물고기 잡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는데,
지금 와 본 산계마을은 너무 도시화 된 느낌이다.
쌍계산천마을은,
산계1~3리 마을로 태백산맥인 석병산과 자병산 두 산을 기점으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산계리는 이런 지형 때문에 1750년대까지 쌍계리로 불리다 1759년부터 산계리로 바뀌었다 한다.
이 마을은 20여년 전만해도 옥계면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로 불리 울정도로 탄광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라시멘트의 지원과 젊은 지도자들의 열정으로,
어느 마을보다 먼저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이 되었다.
이 마을의 명소는 산계석화동굴이다.
산계에는 산계동굴, 영밑동굴, 황지미동굴,
가사골동굴을 비롯한 석회암지대 특유의 아름다운 천연동굴이 있고,
사일거사 심래조가 무릉도원이라고 여겼던 황지미골에는 방도계의 글씨가 아직 남아있다.
절골 산계암 절터에는 풍류에 시달린 돌탑이 저j홀로 외로이 서 있고,
종선각에 있는 산계금옥방역사적비는 문화재로 지정됐다.
산계리에는 흥곡서당, 가사골서당, 반암서당을 비롯해,
수월정, 봉래정에서 고명극, 서하순 등이 학문을 가르쳐 유진근, 유진락, 배영근 등 한학자가 많이 배출됐다.
산계3리 고재열 집터에는 수월정터가 있는데, 조선시대 한학자 고명극이 지은 정자가 있던 장소이다.
고명극은 이곳에 수월정을 짓고 찾아온 선비들과 글을 읽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했던 고명극은,
서하순, 유진학과 함께 3학사 또는 삼효자라고 불릴 정도의 효자로,
이 곳은 주변에서 효자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