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가슴으로 운다.
◆ 아버지는 아픔을 말하지 못한다.
아들은 늙어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고,
딸은 늙어갈수록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스스로 늙어 감을 느끼는 순간부터 왠지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워집니다.
몇 년 전만해도 그리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아버지의 모습과 사랑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 때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하고 은연중 나의 처신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철이 없을 어린나이도 아니건만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든든함을 고마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아파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장티푸스 후유증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골수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다리가 저려 깨기가 다반사였고,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부르르 떨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새벽이면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셨습니다.
어쩌면 자는 것보다, 힘이 들더라고 일하는 것이 더 편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아버지는 아파도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아픔을 말하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그저 대충대충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도,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아내의 자식의 어려움들이 항상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모자람을 채워주지 못함이 안쓰럽고 미안하기에,
자신의 아픔쯤이야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한결같이 묵묵히 당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땀을 흘리셨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가슴으로 아파하고 속으로 우는 존재입니다.
화가 나면 아버지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없이 뒷동산을 거닐거나 땀에 흠뻑 젖도록 일을 합니다.
아내나 자식은 화가 나도, 남편이나 아버지라는 대신 풀어줄 사람이 있지만,
아버지는 홀로 이겨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나약함을 남에게 들어내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이미 경쟁에서 뒤쳐져 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만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가족도 함께 지는 것이니까요.
과부가 홀아비 심정을 아는 것처럼,
아버지가 되어봐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남자는 죽을 때가 되서야 철이 든다.>란 말처럼,
자신의 늙어 감을 자각할 때 비로소 말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책임지고 가는 자리는 아픔마저 감내하고 가는 자리입니다.
작은 아픔마저 참지 못하고,
아플 때마다 하소연해서는 진정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아픔마저,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존재입니다.
※ 장티푸스 ; 티푸스균이 창자에 들어가 일으키는,
급성 법정 전염병으로 발진, 설사, 장출혈, 뇌증, 발진 증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