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또 행복하리라.
어쩌면 행복이나 불행의 느낌은, 생각이 만드는 구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에게 같은 상황을 보여줘도, 어떤 사람은 행복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행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복과 불행의 구분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관적이냐 객관적이냐에 따라서도 다른 결과가 도출되기도 할 것이다.
행복하거나 불행하여도 어차피 주어진 라이프사이클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큰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행복이나 불행은, 결국 관념이 몸이라는 육체를 빌려 만드는 일종의 자기만족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하다 느끼고 사는 것과 불행하다고 느끼고 사는 인생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사는 사람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만,
반면에 불행하다고 느끼고 사는 사람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사는 사람은,
<내 삶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여 이끌어가는 삶을 살지만,
불행하다고 느끼고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임에도 그 인생에 끌려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가는 인생임에도 늘 빡빡하고 고달프다는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매일 매일을 행복하다란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행복하다는 최면에 걸려 사는 것 또한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니, 극단적으로 불행의 낌새만 보여도 멀리 도망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린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단 한번의 나의 인생을 위해, 나만의 시나리오와 나만의 멋진 연출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항상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감정 역시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즐거워야 내가 즐겁고, 그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감정의 교류인 것이죠.
스스로 앞에 나서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비록 빛은 나지 않아도 함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행동을 희생이라 하지 않고 사랑>이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문득 난 왜 이리 지지리 복도 없고 하는 일마다 힘든 것일까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의외로 많은 것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풀리곤 합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면 정작 큰 것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에 익숙해지면 정작 이미 내가 겪었던 행복한 것들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내게 모자란 것 부족한 것이 생길수록, 내게 이미 있는 것을 나누면 의외로 쉽게 그 틈이 메워지기도 합니다.
물질의 모자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의 모자람은 결국 나의 마음이 메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향해 찡그리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진정 행복하고 또 행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