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쓰는 편지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그 누군가에 대한 아련한 심상의 그리움을 담아서 말입니다.
마음으로는, 느낌으로는 알 수 있는데,
말로는, 행동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의 절절함을 담아 전하고 싶습니다.
그냥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위로가 되지만, 그럼에도 가슴은 절로 아픕니다.
속 시원하게 소나기라도 퍼붓는다면, 마음에 쌓인 그리움이란 병이 옅어질까요?
스르렁스르렁,
가슴에 스며드는 빗방울마저도,
복잡한 생각을 붙잡고 하루라는 시간을 검은 장막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무작정 생각나는 누군가를 붙잡고, 흠뻑 술에 취해 비 오는 거리를 쏘다니고 싶습니다.
희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이 물빗방울에 튕겨져 점점이 흩어지고,
바퀴에 밟힌 빗물이 산산히 부서져 나의 온 몸으로 달려드는 것 같은,
삶의 처절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추위에 입술이 파리해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아도,
채워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빗소리의 애절함은, 비오는 날 내 가슴이 부르는 나의 노래입니다.
비록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지 못해 이렇게 나는 빗물의 처량함으로 남겨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의 잔잔한 행복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추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 비가 내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아니면 비가 주는 투명함이나, 어둠의 장막 같은 안온함도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왠지 기뻤던 날들보다 슬펐던 날들이 더 생각나고,
기쁨을 주었던 사람보다 아픔을 준 사람이 더 생각납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 온 날들이,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처럼, 가슴을 들쑤시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애당초 살아 온 방식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다가가면 마치 금방이라도 잡을 것처럼 환상에 빠져 버립니다.
왠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 너머로 빗소리가 들리면,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내 체온이 가시지 않은 이불속에서, 세상에 대한 근심일랑 잊어버리고,
그저 잠에 취해 한 숨 푹 자고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쉽게 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 역시,
빗소리가 주는 휴식 같은, 마음의 안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 오는 날 만큼은, 눈을 감고 아무것도 모르는 태아의 순진함과 같은, 마음의 평화에 빠져버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나 그리움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일과도 잠시 놓아두고 싶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내 마음속에도 내립니다.
어쩌면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아픔을 씻어버리기 위한 발버둥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렇게 애 쓴다 해서 누군가가 나의 마음에 남긴 의미를 잊어버리기는 쉽지 않음도 압니다.
하지만 비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채 피지 않은 꽃망울과 연한 잎사귀에게 더 아름답고 싱그러운 모습을 선물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비의 씻김같이 사람으로 인한 상처나 아픔을 딛고,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리라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