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진흙탕에서 핀 연꽃과 같다.
진흙탕에 빠질 생각이라면,
옷이 깨끗하길 바라서는 안 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
함께 무슨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류가 되는 것이 옳다.
함께 어울려 뒹굴기도 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울리기 싫으면,
애초부터 진흙탕에 뛰어들지 말아야지,
뛰어든 뒤 홀로 고고한 척 하는 것은 오히려 더 꼴불견이라 할 것이다.
<사람은 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저 홀로 특출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사람이다.
연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진흙탕이다.
그렇게 진흙탕은 더러움의 상징처럼 비춰지지만,
진흙탕을 비집고 나온 것들은 다른 것에 비해 더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갯벌에서 나오는 조개나 해산물처럼,
더러운 곳에서 나왔다고 모두 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에 비해,
더 영양가가 높아 사람의 몸에 유익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이면을 헤아려 본질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흙탕 속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
못생긴 사람이나 잘생긴 사람이나 진흙이 묻은 얼굴은 모두가 똑같다.
하지만 문제는 진흙탕을 벗어나도 똑같다고 믿는 것이다.
분명 사람 각자마다 이름이 있듯이 성격이나 능력도 다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호 역시도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차이들과,
자신이 지닌 능력의 일부분이,
서로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인연일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흙탕일 수밖에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린 우리가 만든 세상이란 링에서,
욕망이란 각자의 꿈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고 혼자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때쯤이면 마음 안에 나를 지켜 줄 그 누군가를 간절하게 워하게 된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처럼 길도 가르쳐주고 외로움도 달래주고,
밝은 빛을 내어 앞길을 비춰주기를 염원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그것을,
인연이라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저 향기 짙은 나물처럼 내 마음에 짙게 배어 머물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그 향기에 취해 그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을 만나도,
결코 외면하거나 잊을 수 없게 말이다.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아니면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사람은 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 마음을 나눈 사람조차 잊거나 배신하고 산다면,
그것만큼 무가치한 일 또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