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남자
난 체질상 술이 잘 못 먹는 것 같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마을 입구에 있는 조그만 가겟방에서 술심부름을 하다가,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기도 했고,
막걸리를 만들고 나온 술 찌꺼기를 먹고 취해 뻗어버린 기억도 있다.
또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맞이하는 동창회에서 소주 몇 잔에,
벌겋게 변해버린 얼굴로 찍은 사진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난 술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돋아날 정도로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한다.
어제 아내는,
직장에서 신제품교육이 있어 원주에 다녀왔다.
신년이라 교육 후 단체회식이 있어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거기서 동행한 동료들이 먹는 폭탄주를 보고 많이 놀랐나 보다.
나 역시 집에서는 술을 거의 안하는 편이고 아내 역시 술을 전혀 못하는지라,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당황했으리라.
결혼 전 직장생활을 했다지만,
아직도 아내는 남자에게 있어 술자리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나 역시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숙취로 고생하지만,
술자리를 쉽게 외면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좋을 정도로 마시겠다고 다짐하지만,
술이 한두 잔 들어가게 되면 쉽게 절제하기 어렵기도 하다.
또한 이젠 나이가 든 만큼,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가 있는지라,
아랫사람이 권하는 술은 쉽게 거절하기 어렵기도 하다.
물론 모두가 핑계일 수 있지만,
술이 없는 모임은 현실에서 그리 흔치도 않고,
그만큼 서로를 허심탄회하게 알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기에,
인간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쉽게 거절할 수도 없다.
그만큼 남자는,
술을 먹고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주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음이다.
술은 바로 남자에게 있어,
인간관계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기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의 술 접대와 같이 다양한 사람을 겪어볼 수 있는 기회는,
술자리가 아니면 그리 흔하지 않음도 현실이다.
경험을 하지 않은 것과,
해 본 것과의 사고의 넓이는 의외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하고 욕도 먹어봐야 진정한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사회생활을 해봐야 그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책에서나 말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누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는가?
경험이 바로 지혜라고 하는 것은,
바로 몸이나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의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막연히 건강에도 좋지 않는 술을 왜 먹을까? 하는 생각에 앞서,
술이 주는 순기능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술은,
바로 남자의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치고 술이 없는 자리는 없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술은 조미료와 마찬가지로,
마음과 마음을 조화시키고 매끄럽게 만드는 윤활유와 같다.
물론 술이 원인이 되는 분쟁이나 다툼도 있지만,
정도에 지나치지 않으면 그만큼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없다.
술을 통해 마음을 교류하고 긴장을 갈아 앉히며,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이처럼 모든 일이 그렇듯,
술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의지를 탓하는 것이 더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