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많은 가족일수록 큰소리도 많이 난다.
◆ 정이 많은 가족일수록,
큰소리가 많이 난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가정은 삶의 근본과 같다
그래서 곧잘 가정을 나무와 비교하기도 한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일수록 비바람에 잘 견디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안 역시 가족간 서로의 믿음이 굳건할수록 어려움을 극복하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굳건한 결속력을 가진 가정이라 할지라도,
정이란 놈이 한번 심술을 부리면 쉽게 붕괴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이 상하고 아파도 최소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를 베려하려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이란 함정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배려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이란 자연스럽게 흘러야지 그렇지 못하면 역설적으로,
오해와 질투의 빌미가 되어 영원한 이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이란 물과 같아 어떤 그릇에 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보다 쉽게 담을 수 있도록,
내가 정이란 놈을 조절하여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정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정이 많은 가정일수록 큰소리 역시 많이 나는 법이다.
어찌,
사랑의 대화가 있는데 조용할 수 있을까?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를 격려하는데 마음만으로 가능할까?
정을 표현하고 정이 흘러가는데 소리가 안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예전 우리가 어린 시절만 해도 비록 먹을거리가 없어 매일 모리밥만 먹어도,
행복했음을 우린 어린이 되면서 잊어버린 걸까?
마음이 행복해야,
진정 행복했음을 우린 잊은 걸까?
정말 웃기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어른이 된 후,
현실이란 핑계로 정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작그만한 밥상조차 없어,
볏집이나 왕골로 엮은 자리에 감자 한바가지를 놓고도 그리 행복했었는데 말이다.
감자 한 알이라도 더 먹으려고 애쓰면서도 결코 내 동생의 먹을거리를 탐하지 않았던 마음들...
양지바른 마루에 앉아 소꼽놀이를 하면서도,
부모님의 밥상을 먼저 차리고 부모님이 먼저 드셔야 비로소 수저를 들었던 아이들...
스승의 그림자 마저도 밟지 않았던,
진실한 존경심이 절로 울어나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지금도 어린시절 벅적거리는 사람사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다스리는 어머니의 회초리와 꾸중하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들리고,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와 아이를 기다리는 가족의 따뜻한 정이 정말 그립다.
정을 나누는,
마음이 먼저가 되지 못하고,
아이들의 등수에, 성적에, 가져오는 월급 봉투의 두께에 따라,
정의 무게가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정의 크기만큼 큰소리가 들릴 수 있는 살아있는 가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게 됨은 이 역시 나의 욕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