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안 가득 악취가 풍겨나오 듯 마음이 아리다.
무엇인가 마음이 원하는 것이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
아니, 본시부터 이런 종류의 감정들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충족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덕적인 굴레나 양심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에 불과하고,
내가 소유하거나 내게 속해있는 것들에게서 벗어나,
영혼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 대한 간절함일 것이다.
무더위에 내리는 보슬비처럼 마음이 눅눅해져 온다.
에어컨은 힘차게 더위를 밀어내고 있지만,
한 밤의 짜증스러운 기분마저 덜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먼지가 가득 쌓여 뿌옇게 변해버린 창으로,
어둠에 잠든 바깥세상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더위에 지쳐 한 순간도 움직이지 않는,
말라버린 가지위로 내려앉은 매미의 웅크린 날개처럼,
내 안으로 세상을 끌어안고 산다.
때로는,
더위를 몰아내기 위해 창을 열어도 좋으련만,
세상을 향해 굳게 잠긴 창가로 커튼만 길게 드리워 있다.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면서 ,
난 아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너무나 무더워 잠도 잘 못 잘 바에는,
차라리 컴퓨터를 벗 삼아 글이나 몇 줄 쓸까 해서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왠지 오늘 무엇인가 잊어먹은 것처럼 허전하다.
사람의 습관이란 묘하다.
이렇듯 사람은 살아가는 와중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굴레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왠지 끌려가는 것 같은 자신에 대한 반항이리라.
분명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에게 굴레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감정이 상할 정도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여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사람이란,
실상 함께 삶을 영위하는 주변사람이란 벽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그 사람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없고,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의 굴레가 되어서,
서로를 견제하거나 보완하며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절망감과 외로움에 허덕이지만,
이 또한 다른 존재에 의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행복이나 자유, 그리고 슬픔마저도 어쩌면,
나 아니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인 비교에 따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삶이란 함께 사는 다른 존재에 의해 빛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대적인 가치가,
바로 삶의 방종을 예방하는,
처방전임과 동시에 굴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