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전하는 말
◆◆ 달이 전하는 말
기억난다.
한 여름 날 더위에 지쳐 문득 잔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눈앞에 밀려들 듯 다가오는 여름 밤하늘이 기억난다.
여름 날 소나기라도 내린 뒤의 서늘하고 그 청명하던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말이다.
잠든 아이의 눈망울처럼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커튼사이로 은근슬쩍 넘어오던 노란 달빛자락이 눈에 선하다.
달이 떠오른 밤하늘은 유난히 아름답다.
때로는 만월로, 또 때로는 새끼손톱처럼 작아져, 산그늘에,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한다.
이런 달이 떠오른 밤하늘은 낮에 본 그 하늘이 아니다.
구름도 그렇고, 짙푸를 정도로 파랗던 하늘도 그렇다.
심지어 적막하기만 하던 바람도 그 무엇엔가 놀란 듯 날개를 퍼득거리는 새가 되어 살아난다.
그리고 낯선 거리를 배회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난 듯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단지 하늘에는 그저 달 하나가 덩그러니 떴을 뿐인데 말이다.
이처럼 달은 심상의 그림자다.
즉 각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꿈들이 현실인 양 밤하늘에 살아 돌아다니고 있음이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또 때로는 원망으로, 사랑이 되기도 하면서, 이별이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밤은 안식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밤하늘의 달 역시도 왠지 까탈스럽지 않고 편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상 밤은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이기에 난폭하고 변덕스럽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은 예사스럽고,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어둠이라면 낯선 거리에 혼자 버려진 듯 으레 두렵고 칙칙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항상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듯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달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날이나 해가 환희 비치는 날에도 달은 지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우린 아침이 되면 마치 달이 사라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바로 달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없다 해서, 마음에 남아있는 달에 대한 환상마저 아무 일 없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평생 짊어져야 했던 마음속에 자리한 추억이란 놈의 심술궂은 장난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들은 항상 사람의 등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