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小愚) 2010. 5. 20. 12:53

 

 

 

 

 

◇ 커피 한잔   

 

아침을 안 먹은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침잠이 많아 출근시간에 쫓겨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모두가 나의 게으름 탓일 것이다.

하지만 아침의 가벼운 배고픔이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아침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는 말은 내게 있어 그저 지나치는 바람일 뿐이다.

 

그렇게 출근 후 책상에 앉아,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맛은 너무나 좋다. 

커피가 몸에 좋으니 안 좋으니 갑론을박하지만 내게 있어 커피 한 잔은 행복이다.

 

나는 주로 커피를 뜨겁게 마신다.

그리고 커피 잔이나 머그잔보다는 일회용 종이컵이 타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종이컵을 움켜쥐었을 때의 따뜻한 온기가 왠지 좋고,

혀가 데일 정도의 뜨거움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왠지 커피가 미지근하면 제 맛과 향기를 잃어버린 듯하다.

 

커피를 마시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잠이 와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만남이 즐거워서 마시고,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고 마시고,  또 때로는 추워서 마시고,

남이 마시니까 마시고 그저 습관적으로 마시기도 한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왠지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은,

카페인 중독에 의한 현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성에가 가득 낀,

추운 겨울 날 마시는 커피는 특별하다.

유리창에 입김이 닿으면 녹듯이 후후 불며 마시면 추위가 가신다

.

난 땀이 죽죽 흘러내리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즐겨 마신다.

햇살에 달아오른 열기도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면,

왠지 금방이라도 더위가 가실 것같다

 

사실 커피 한 잔은,

마시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신만의 여유요 자유일 것이다

내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뜨거운 커피를 마실 때는 아무런 잡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비록 짧은 시간만큼은 쓸데없이 잡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사람은 너무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생각 중에는 더러 쓸모 있는 생각도 있지만 대부분 실천하지 못하는 공상들이다.

그러한 생각들은 옳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번뇌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차라리 바보가 되어 온전히 커피가 주는 여유와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저 깊이나 의미를 가지지 않은 사춘기 소녀의 공상처럼 그저 나이고 싶다.

눈을 감고 짙은 그리움에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