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소원(所願)

소우(小愚) 2010. 4. 28. 09:35

   얼마 전까지 소녀시대가 부른 <소원을 말해봐>란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각각 다른 개성의 소녀들이 나와 <소원을 말해봐>라고 외치면 어떤 소원도 이루어질 것 같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소원>이 단 하나일 수는 없다.

   자신에 대한 소원, 자식으로서의 소원, 아버지로서의 소원,

   남편으로서의 소원 등, 각각의 위치에 따라 원하는 소원도 다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살아가기에 바빠 자신의 진정 바라고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소원조차 모르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내게 있어 <소원>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었다면,

   사춘기 때는 사랑과 이성에 대한 것이었고,

   결혼 적령기에는 최고의 아내를 얻어 결혼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또한 결혼 후에는 집을 마련하여 가족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걱정 없이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은,

   남의 신세를 안지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되어버렸다.

 

   젊었을 때는 바라는 것이 그토록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을 하나 둘 지우고 살다보니 이젠 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바라고 열망해도, 그리고 안타까워 몸부림쳐도,

   사람 마음에 꽉 차도록 만족하리만큼의 소원은 애당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아마 내 힘으로는 이룰 수 없어 신(神)과 같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이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에게 얽매여 살지는 않되 잊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려진 사람의 소원도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아내는 남편의 안정된 직장을,

   자식은 부모의 건강을, 그리고 연인들은 진실한 사람은 원할 것이다.

   사랑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도 없으며, 사랑만큼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서로 사랑의 크기만큼 사랑하지만, 이별할 땐 그 크기만큼의 상처를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비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 날엔, 왠지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막연한 그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가슴 아린 고통을 느끼게 된다.

   소리 없이 젖어오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나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마 이런 외로움과 쓸쓸한 날의 소원은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일 게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소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