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스(nonsense)
에이! 열 받네.
이게 뭐야. 내게 왜 그러는데.
그만 두면 될 것 아냐. 정말 쪽 팔려서.
이렇게,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탓하고 살면,
자신의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
자신의 감정을 마음 내키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전부를 들어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다.
물론 기분 내키는 대로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이 편안한대로 일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보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최고의 만족은,
바로 자신을 극복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나 스스로 내가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야,
진정 기쁘고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유모나 위트도,
생활 속에 젖어있어야 자연스럽고,
웃음이 살아있는 진정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은 억지로 꾸민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과 일상이 기쁘지 않은데 억지로 웃고 살자고 한다면,
그건 난센스(nonsense)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어울러야 좋은 것이다.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고 조화롭지 않은 것은,
남에게 오히려 불편하게 보인다.
대화에 거짓이 보이면 왠지 사람이 진실하게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호감을 이끌어낸다.
사람에게,
부족함은 오히려 당연하다.
물론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남에게 비쳐지는 모습이,
어쩌면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일 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완벽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못 배우고 부족한 것이 결점이 아니라,
그것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하지 않음이 바로 그 사람의 결점인 것이다.
부족함을 알아야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한 삶의 목표가 생기고,
그것이 바로 삶의 활력이 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렇다.
부족하다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삶의 전부가 부족함으로 채워진다면,
오히려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희망을 고사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요즘,
삶이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남도,
이와 같이 치유할 수 없는,
절망이란 병에 걸려서일 것이다.
흔히 우린 말한다.
죽을힘이 남았다면 그 힘을 살아가는데 전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말이다. 되돌아 볼 희망이 남아있고,
작은 여유조차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죽음이란 최후의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
개그콘서트에서,
나오는 말처럼 작금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다.
승리자에 의해 역사가 기록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평생을 앞자리에 서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군대의 선착순처럼,
달리고 또 달려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험하고 힘든 여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앞자리에 서기 위해 살아가지만 막상 앞자리에 서면,
더 험한 책임과 의무라는 길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어른이 되어 가정을 가지면,
싫든 좋든 가장이란 앞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렵게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음을 얼마가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자 난센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