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죄
아버지가 아무리 잘해도,
어머니의 자상함과 희생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어머니 편에 선다.
이혼을 하는 가정을 봐도 대부분 아이들은 어머니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부부의 관계에서,
싸움의 원인을 살펴보면,
일방적으로 아내가 잘못하거나 남편이 잘못하는 경우는 없다.
서로 다 고만고만하기에 싸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람의 시선은 남자를 향한다.
왜냐하면,
잘잘못은 차치하고라도,
남자는 가정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에 의당 남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이다.
요즘,
아버지들은 불쌍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가정의 경제권은 어머니가 쥐고 있다.
아버지의 생활권은 대부분 바깥에 있기에 집에서 발생하는 일까지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관리를 위임하게 된다.
남자는,
돈은 벌어오지만,
그 돈의 쓰임에 대한 집행은,
어머니의 몫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난다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고 가족이란 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지게 마련인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왕이다.
어찌되었든 어머니는 가정에 있는 시간이 많아 아이들과 접할 기회가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살게 된다.
이러한 정은,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존경은 하나 가까이하기에는 왠지 거부감이 들지만,
어머니는 곁에 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든든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늙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벌어놓은 돈이나 자식에게서 부양을 받아야 되는데,
이미 그 경제권은 아내의 몫이 되어버린지라, 용돈을 타서 써야 하는데,
그것도 몫을 나누다보면 나에게 돌아올 몫은 작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늙고 병들면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머니는 늙어도 어느 정도 움직일 힘만 있으면 가사일과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자식들에게 환영을 받는 존재이지만,
아버지는 돈이 떨어지는 순간, 어느 자식에게도 환영받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방안이나 공원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리에서 폐품을 줍고 박스를 수집하는 그 사람이,
미래의 내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갈수록,
아버지의 영역이 희미해져가는 것이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듯이 결혼한 남자라면,
누구나 아버지라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란 역할은 자신이 하기 싫다고 해서 벗어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식이 자라,
또 다른 자식의 아버지가 되어도,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은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어쩌면 죽음에 이를때까지 자신이 져야 할 숙명이 되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람의 짐이 되지 않도록,
늙고 나이가 들어 자신조차 어찌하지 못할 경우를 생각하여,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 밖에는 없다.
말은 서로를 친하게 해준다.
때로는 뜻이 맞기도 하고 때로는 어긋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에든 서로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너무 남자라는, 아버지라는 권위의식에 집착하지 말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스스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남을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다가서야 한다.
우리는 흔히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작 소중한 사람은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이지,
품안을 떠나버린 사람이 아니다.
서로에게,
정(情)이 남아있는 한 배신은 없다.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싸우더라도 한 울타리에 머물면 자연스럽게 해결 될 것이다.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지는 것은 정(情)이지,
돈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