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변명
삶은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사람은 살아갈 뿐이다.
당장 죽을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내일이란 해가 뜨면 또다시 새로운 시간과 마주서야 한다.
희망이란 놈도, 행복이란 놈도,
그리고 사랑이란 놈도 때때로 나를 나누려고 애를 쓰지만,
나는 세상이란 놈 앞에 서면 항상 무능해져 버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마주하면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전부인양 크게 자랑하려 애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화려한 겉포장을 한 내 모습이다.
설령 나의 마음은 속죄의 속울음을 삼킬지라도,
세상에 보여주는 내 모습은 향기가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 결혼하여 셋방살이 할 때에는 전세라도 얻었으면 했다.
하지만 전세를 얻고 집을 사고, 아이들이 자라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욕심도 함께 자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매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을 하는 내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삶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함을 한탄하며 살았음을 부정하지 못함은 아직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하루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그렇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언제나 특별한 날이길 원한게 된다.
하지만 지나보면,
오히려 가난하더라도 마음의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어린시절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삶이란 자신을 위한 듯하지만,
실상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Show)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 남들의 눈에 시샘이 나고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여주기를 바라게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에 익숙하다.
아니 다른 사람이 미처 몰라볼까봐 이웃이나 친구를 찾아가 일부러 자랑하고 다니기조차 한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가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시선에서 더 많은 만족을 느낄 것이다.
사람과 더불어 섞여 산다는 것은 아마 이런 의미에서 일게다.
남들이 다 가진 것들인 줄 모르고 혼자 가진 듯이 자랑하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며,
위로하고 살아가는 것일 게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등(목말)을 타고 아버지 등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듯이,
자라면서 보는 세상은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에 행복을 느끼기조차 쉽지 않다.
요즘은 미처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조차 바쁘기에,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선택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남자에게 있어 아마 가장 슬픈 것은 포기가 아닌가 싶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자신이 가진 환경을 극복하지 못해,
도전조차 못하고 포기해야 할 때는 실망을 넘어 절망하게 된다.
실력이 모자라면 더 노력하여 극복할 수도 있으련만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내게 있어서는 군문제로 인한 좌절일 것이다.
이런 경험은 아마 남자에게 있어서는 이별의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다 운명이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나의 인생의 비틀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도 늦어진 졸업 인해 야기된 친구의 놀림과 같은 것은 나의 아킬레스건과 같다.
사실 남자에게 있어 변명만큼 초라한 일도 없다.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더라도 묵묵히 이겨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매력적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궁상떠는 모습은 스스로도 비참한 일이다.
때문에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한다.
그래서 쓸데없이 손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남자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나 역시도 나이가 들어 생을 정리하는 순간까지,
가급적이면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