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 허균,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과,
그의 누이이자 조선시대 유명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은,
강릉시 초당동 4223m² 터에 지상 1층 연면적 186m² 규모의 목조한옥형태로,
한옥의 장점을 잘 살려 허난설헌 유적공원 근처에 세워졌다.
기념관은,
강릉이 배출한 개혁 사상가 허균과 여류 천재시인 허난설헌,
두 남매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연구,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허균은 조선 중기의 학자·문인·정치가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수(惺叟)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학문에 뛰어난 집안이어서 아버지 엽(曄), 두 형인 성(筬)과 봉(篈),
그리고 누이인 난설헌(蘭雪軒) 등이 모두 시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문인으로서 그는,
소설작품·한시·문학비평 등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문집에 실려 있는 그의 한시는 많지는 않지만 국내외로부터 품격이 높고 시어가 정교하다는 평을 받는다.
시화에 실려 있는 그의 문학비평은 당대에는 물론 현재에도 문학에 대한 안목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홍길동전>은,
그의 비판정신과 개혁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적서차별로 인한 신분적 차별을 비판하면서,
탐관오리에 대한 징벌,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구제, 새로운 세계의 건설 등을 제안했다.
〈엄처사전〉·〈손곡산인전〉·〈장산인전〉·〈장생전〉·〈남궁선생전〉 등은 그가 지은 한문소설인데,
여기서는 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의미 있게 살아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남다른 삶의 모습과 사상을 기술했다.
허난설헌은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집안과 교분이 있던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8세에〈광한전백옥루상량문)지어 신동이라고까지 했다.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했으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남편은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했다.
친정집에는 옥사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현재까지 시 213수가 전하며, 그중 신선시가 128수이다.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으로 대별된다.
유고집으로〈난설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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