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小愚) 2009. 8. 28. 11:09

 

 

 

♬♪ 고무줄 놀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 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긴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 것은 백두산~~

 

도회지나 시골 공터 어느 곳에서나,

계집아이들에게는 고무줄 하나면 만사가 행복했던,

그 시절의 놀이가 바로 고무줄 놀이였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검정 고무줄을 마당의 바지랑대에 묶고 고무줄 놀이하다,

 

고무줄 놀이하다보면,

바지랑대가 넘어져 방금 널어놓은 빨래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어머니께 혼나던 누나의 모습도 기억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신작로 공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러,

흥겨워하던 여동생의 나폴거리는 댕기머리도 생각난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이와 같이 고무줄 놀이는,

6.25의 처참함과 반공이념이 놀이문화로 정착되기도 했던 것처럼,

고무줄 놀이하면서 부르던 노래는, 놀이문화와 어울리지 않는  참 이상한 노래가 많았던 것 같다.

 

뜻을 알 수 없는 노래들. 

그 노래에 맞춰 팔짝거리던 계집아이의 검게 그을린 얼굴들,

그리고 꼬질꼬질 코 묻은 손,  근심걱정 하나 없는 천진스러운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게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고무줄 하던 계집아이의 몸동작은 왜 그리 경쾌하고 흥겹던지...

체조선수를 해도 될 정도로 유연하고 가볍고 발랄했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어쩜 그렇게 높이 깡충깡충 뛰어 오를 수 있었는지...

아직도 시골 고향 초등학교에 가면 그 시절 계집아이들이 부르던 노랫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 행복했던 시절,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 무슨 놀이든지 가능했던 그 시절,

어둠이 내리는 운동장 구석에서 노는 계집아이의 즐거운 모습이 질투 난 사내아이들은,

공연히 고무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뛰어가면서 끊어버리는 심술을 부리고는 했다.

그러면 계집아이들은 공연히 고무줄을 찾으려 사내아이들을 쫓아가고...

아마 그렇게 동심의 하루는 저물어 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질리지도 않고,

매일 이런 장난의 연속이었지만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만일 고무줄이 끊어지는 것이 아까웠다면,

커다란 싸움이라도 났을 것이지만 거의가 찝쩍거리는 장난에 머물렀다.

 

혹여 계집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사내아이는 고무줄을 움켜쥔 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었다.

물론, 그 중 너무 장난이 지나쳐 교무실에 불러가 선생님께 사정없이 종아리를 맞기도 했지만,

그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고무줄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고무줄놀이는,

서로 친한 친구끼리의 놀이었기에 여러 무리가 운동장에 있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사내아이가 끊어가는 고무줄은 늘 특정한 대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무줄이 욕심이 난 것도 아니요,

심술부리는 것도 아닌 계집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였을 게다.

 

고무줄놀이는,

계집아이의 외로움을 달래는 참 좋은 놀이였던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만 있어도 가능했었다. 

또한 사람이 없어도 양 쪽을 나무나 바지랑대에 묶어놓고 얼마든지 혼자 놀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가끔씩 휴일이면,

턱 괴고 앉아 베란다 창문 너머로 ,

계집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릴 때면 불현듯,

그 시절 고무줄 놀이하던 계집아이들의 천진스런 얼굴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