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마음의 여행

소우(小愚) 2009. 2. 23. 11:57

     여울을 타고 아지랑이처럼 흐르는 바람을 보았다.

     바람결에 산자락을 숨바꼭질하듯이 지나치는 구름과, 구릉을 나직하게 한숨 지며 지나가는 새를 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녹이고 흐르는 시냇물의 한탄과,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검붉은 석양의 달 빛 사이로 스러져가는 청춘의 젊은 날은,

     사랑에 대한, 인생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의지 없이 세월의 들녘 앞에 그렇게 버려졌다.

     나에게 세상은 모든 것에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또한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을 때에는 사랑과 기쁨이 되었고,

     내 곁을 떠났을 때에는 여름날 내리는 소나기처럼 눈물과 서러움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기대와 목표를 가진 날은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이었으나,

     이렇게 지난 세월의 추억 속에 멈추어버린 작금에는 시간의 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방랑자에 불과하다.

 

     사랑이 곁에 있던 날에는 슬픔일망정 즐거움이었다.

     가슴 터지도록 속울음을 울어도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누구 때문에, 무슨 이유로, 스스로 그 존재를 담아둘 수 있었다.

     그리고 숭고한 열정과,

     터무니없는 질투와, 바람을 이루지 못한 좌절과,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숙명처럼 지고가야 하는 청춘의 덫이었다.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되고, 인생이 되고, 내 삶의 의지가 되었던 사랑이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덜어지고 헤져 너덜너덜 자투리가 되어버린 사랑이여!

     이젠 가슴속으로만 추억처럼 간직해야하는 그 시절의 사랑이여!

     나는 아직도 그 곳,

     그 자리에 그렇게 머물러있고 사랑하는 마음 변하지 않았는데,

     세월은 귀밑머리 백발처럼 나도 모르게 흘러가 버렸다.


     한 때, 그대가 내게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었던 기억을 어찌 잊겠는가?

     삶에 묻혀 모두를 잊어버렸듯 싶지만 불현듯 봄날 들녘에 피어나는 이름모를

     들꽃처럼 피어나 가슴 절절히 그리움이 되어짐을...

     우린 평생, 떠난 사랑이든 남아있는 사랑이든 붙잡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버려지고, 삶에 버려진 텅 빈 가슴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잠시라도 사람으로부터 관심이 멀어지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잡으려고 화장하고 치장할 때는,

     이미 늦었음을 우린 알게 된다.

 

     때때로 허망하게 다가오는 외로움을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에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이곳저곳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고,

     애써 잠을 자도 잠시의 치유일 뿐, 사람으로부터 덩그렇게 홀로 버려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저 그럴 때에는 시간이 흘러가 가슴속에서 삭혀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인연을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부터

     내게 속한 세상은 변하게 된다.

     그동안 그토록 모자라고 채워지지 않던 여백들이 새로운 의미로 채워진다.

     하얀 백지위에 그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들이 사랑의 언어와, 그림과, 꿈으로 나타나고,

     그동안 내가 가졌던 신념과 이상,

     그리고 하루를 보냈던 일상들마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내게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내게 다가온 장밋빛 환상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자라나 서로의 가슴속에 의미가 되어,

     사랑을 이룬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에게도 결국, 아름답거나 아픈 추억으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정말 힘든 순간은 자신에 대한 좌절이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어느 정도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이루어 누려야 할 것은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다른 친구와 비교될 때이다.

     만족은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은 것 아닌가?” 란 느낌은 있어야 되는데,

     항상 뒤 쫒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게 되는 것 같아 참담함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숫자만큼 채워지지 않을 때 스스로가 주눅 들고 초라하게 된다.

 

     말로는 “인생 별 것 있어. 죽으면 누구나 한 평 남짓 흙 속에 묻히기 마련인데.” 라고 자위하지만,

     이 것 역시 자신의 실패에 대한 자위일 수밖에 없다.

     어째든, 이렇게 살았던 저렇게 살았든지 내 생명이 영위되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 의미로 남겨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존재감이 있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난 이렇게 채워지지 않는 가슴속 의미를 찾아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