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고향이다.
누가 뭐라 해도,
찾아갈 고향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마음 한 번 안 다치고 사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럴 때마다 찾아가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고향의 산하(山河)나, 친구의 얼굴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 함께 불렀던 유행가나,
고향 집 앞 작은 언덕을 오르던 비탈길에 우뚝 서있던 고목과,
깊은 밤이면 그렇게 무섭고 가기 싫던 외딴 화장실이나,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흐르던 개울마저도,
가슴 먹먹해지도록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었음을 어찌 알았으랴.
하얀 눈으로 가리워진 언덕배기 텃밭과,
고추잠자리, 반딧불, 그리고 이따금 먹던 구운 옥수수와 구운 감자에 대한 기억은,
차라리 추억이라 부르리라.
어린시절,
화전에서 농사를 짓던 산촌의 내가 살던 집은, 초가집이었다.
볏집이 들어오기전에는 늦가을 추수끝에 마당의 땅이 얼면,
황병산 산자락 무새잔등에서 자란 억새를 잘라,
몇 번이나 지개로 등짐 져 가져와 가지런히 엮어서 지붕을 만들었다.
초가지붕은,
쥐들의 세상이고, 텃새들도 함께 살았다.
겨울이면 초가지붕에 열린 고드름과,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왜 그리 처량하던지...
그러다,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스레트나 함석으로 지붕이 교체된 뒤,
비오는 날이면 씨끄러운 소음에 함께 두척이든 삶의 애환들...
아직도 푸나무 울타리에 둘러쌏인 동그란 초가지붕을 잊을 수 없다.
이젠,
나이를 먹은 만큼,
더 많은 것들을 지니거나 품고 살아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세월이 머물었던 자리에는 갈수록 쓸쓸함만 쌓이고 있다.
마음은 점점 겹겹이 외로움으로 쌓여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만 한다.
어느 날 문득,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덧없어지고,
사랑과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한 순간들이 감동이 되지 않는,
그저 그런 의무감으로 남아버린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돌아가 쉴 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집은,
세상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어야 한다.
집은 추위와 더위, 그리고 비바람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항상 돌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집은,
모든 사람에게 최후의 안식처다.
우리가 돈을 벌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고,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바로 내가 머물어야 할 집을 지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힘든 삶을 살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모두가 자신이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휴식공간과,
단란하고 평화로운 집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인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사람 속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우울해지고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몸부림치는 순간들... 말이다.
대상도 없이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워지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이유도 없이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먹고 사는 일은,
어느 자리에 있든 대가(代價)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육체적인 힘이든 능력이든 말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는 더 그렇다.
생존을 위한 자리보전을 위해, 자존심을 꺾는 아부나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
특히,
가족이란,
사랑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이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고 거센 폭풍우가 밀려오더라도,
반드시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사용한 만큼 몸과 마음은 피곤에 지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충전할 수 있는 안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잠이 보배란 말도 있듯이,
집은 우리 모두에게 고향과 같이 소중한 추억이 잠든 안식의 장소이며,
편안히 쉴 수 있는 휴식의 장소이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충전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